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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헌에서] 문화예술의 새로운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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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문화컨텐츠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마치 이전에는 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각성이 없었던 것처럼 너도나도 전문가를 자처하며 요란한 슬로건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너도나도 문화컨텐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이 시대에 정작 깊은 성찰의 예술작품과 마주하기 어렵고 오히려 순수예술 분야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해진다.


문화는 공산품과 다르다. 한국영화가 지닌 부가가치를 자동차 수출에 빗대어 판단하는 경제 관료의 마인드가 우리 모두에게 전염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스크린쿼터 유지에 대한 냉랭한 여론은 문화예술의 특수성을 간과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영화에 대한 일반적 시선이 이러한데 순수예술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원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특정 사안마다 투자 대비 효과의 손익계산을 경제적 측면에서 요구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문화의 두께’를 갖지 못할 것이다. 일테면 최근에 타계한 ‘백남준’이라는 위대한 아티스트를 상기해보라. 우리는 ‘백남준’을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 자랑스러워 하지만 그는 우리의 문화예술 토양이 키워낸 예술가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태백시와 같이 폐광이 속출하던 스페인의 ‘밀바우’라는 도시가 있다. 이 도시에 건립된 ‘현대미술관’이 단순히 멋진 건축물 때문에 매년 수만명의 관광객들로 가득하고 지역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이 아닌가. 미술관의 성공은 번듯한 외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좋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지에 달려있는 것이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새로운 문화 이벤트를 벌이며 장밋빛 청사진을 그려댄다. 대구시 역시 이러한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구사진비엔날레’가 있다. 아마도 ‘광주비엔날레’의 성공에 고무된 바가 클 것이다. ‘대구사진비엔날레’가 단순히 일회성의 ‘이벤트’가 아니라 대구 문화예술의 미래와 경쟁력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아내기를 기대해본다. 사진의 메카로 자처해온 대구가 아니던가.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효과적인 지원은 쉽지 않다. 이는 긴 호흡과 인내심을 요구하며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양질의 문화컨텐츠와 그 토대를 위해서 새로운 시도와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예술 장려의 시스템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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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디어 대한 맹신, 시민의 능동적 참여로 극복해야 미디어가 부모나 교사의 역할을 일정 부분 대체한 지 오래다. 부모에 안겨 스마트폰 영상을 응시하는 아이의 눈길과 강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휴대폰으로 해결하려는 학생들의 손놀림을 보면 어쩌면 상상하는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이제 미디어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의존하는 미디어는 세상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우리를 끊임없이 교육시킨다. 이로 인해 이용하는 미디어 채널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도 특정한 방향으로 고정되고, 유사한 신념과 가치체계로 이어진다. 그래서 보수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의 인식은 보수적 생각으로 이어지고, 진보적인 사람은 자신과 유사한 성격의 매체 이용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면서 사유의 편식은 더욱 강화되고, 자신이 이용하는 미디어가 현실이 되고 진리처럼 받들어진다. 하지만 미디어가 다루는 현실은 지속적으로 중재되고 가공되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미디어가 생산하는 내용에는 미디어 조직의 이윤이나 정치 권력적 욕망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개입되고 주관적 해석과정이 관여한다. 동일 사건이나 이슈에 대해서도 매체마다 바라보는 대상이 다르고 설명이 차별적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