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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선 지난 8월 28일까지 한 달 반 동안 ‘고려묘지명’ 기획특별전이 있었다. 묘지명은 무덤의 주인공에 대한 출생, 이력, 가족관계, 벼슬과 행적 등 개인의 일대기를 적은 서(序)와 주인공의 일생을 압축해 운문형식으로 지은 명(銘)을 돌에 새겨 무덤 안에 넣은 기록물이다. 내가 고려 묘지명 실물들을 처음 공개한 이번 전시를 유심히 살펴 본 가장 큰 이유는 묘지명이 금석문이므로 고려 서예사 연구에 있어 자료적 가치가 크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서예는 지금까지 주로 중국 글씨를 습자의 법첩으로 삼아 왔는데 이제부터 다양한 서체의 금석기 넘치는 고려 묘지명 서체를 우리 법첩으로 개발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근차근 보던 중 묘지명의 다음 내용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아! 죽음은 누구나 겪는 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살다가 죽는 것은 낮과 밤이 바뀌고 추위와 더위가 서로 교대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죽음만 싫어하고 사는 것만 좋아할 일인가? 다만 공명을 미처 세우지 못하였는데도 서둘러 멀리 떠나 처자와 벗들에게 오래도록 슬프고 아픈 고통을 준 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삶과 죽음의 생생한 애환이 이토록 절실한 것이 인생이란 것이다. 그런데 전시장 마지막에 자기 묘지명을 스스로 지어보라는 자찬묘지명 연습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한동안 멍해지면서 빈약한 내 삶의 내용에 대한 회한과 부끄러움, 왜 그렇게밖에 못했노하는 분노 같은 자책으로 범벅이 된 왜소한 존재를 보았다. 나는 부모님에게 어떤 존재였는가? 처자식에게 따뜻하였는가? 제자들에겐 진실하였는가? 가난한 이웃들을 살펴보았는가? 나에게는 자찬묘지명을 채울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슬프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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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