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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대정원의 주인으로 산다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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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리만큼 새하얀 꽃들이 봄철 눈꽃을 형성하는 ‘벚꽃 길’과 줄지어 있는 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 길’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영상을 담을 수 있는 곳, 곳곳에 심겨있는 형형색색의 꽃들과 조각상들이 보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곳, 넓은 수관의 느티나무가 제공하는 시원한 녹음 아래서 담소를 나누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노오란 은행잎과 울긋불긋 단풍잎이 가을을 알려주는 곳.

이처럼 아름답게 묘사된 이곳은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가 맨해튼에 조성해놓은 걸작 센트럴파크(Central Park)도, 르노트르(Andre Le Notre)가 루이14세를 위해 만든 바로크양식의 대표작인 베이름을 르사유(Versailles) 정원도 아닌 바로 우리 계명대학교의 교정이다.

본인이 교수로 부임하며 계명인이 된지도 어느덧 15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조경을 전공한 본인에게 이 교정은 모든 곳이 훌륭한 사색공간을 제공해주는 쉼터이자 연구실이며, 학생들에게 실사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교보재 역할을 한다. 또한 본인을 만나기 위해 본교를 찾은 많은 지인들은 한 결 같이 우리 교정에 대한 부러움을 나타냈고, 본인은 그때마다 망설임 없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교정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을 정도로 본인이 계명인이 된 걸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교정이다.

실로 우리 대학의 옥외환경은 ‘자연 속의 캠퍼스’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대정원과 같이 꾸며져 있으며, 이 아름다운 정원의 주인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우리 계명인이다.

하지만 일부 계명인들이 보여주는 행태-아름다운 꽃밭 사이에 버려지는 쓰레기와 담배꽁초, 보행로에 무분별하게 뱉는 가래와 침, 거친 사용으로 파손되는 시설물, 정해진 보행로를 이용하지 않아 생기는 동선파괴 등-는 과연 우리가 주인의 자격이 충분한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할 때가 있다.

본인은 후학을 양성하며 지식의 전달과 함께 예의와 염치를 겸비한 인간성을 부단히 강조해왔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우리 계명인에게 선행되어야 할 것은 대정원을 향유하는 특권의식이 아니라 예의와 염치를 기반으로 한 주인의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베르사유 정원의 명성이 높았던 건 그것이 가진 극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정원을 극진히도 아끼고 사랑했던 루이14세의 애착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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