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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기획ㅣ이스라엘 - 하마스 전쟁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

이전부터 계속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 언제까지 이어지나

 

단순 종교 문제 넘어 정치, 외교, 경제 등 다양한 영역 걸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1~4차 중동전쟁 연장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유럽에 거주했던 유대인 난민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면서 발생한 유대교 이주민들과 아랍 거주민들과의 갈등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유럽에서 이주해 온 유대 난민들이 지역의 지주들로부터 땅을 사들이고, 점차 경작지를 늘려감에 따라서 경작지와 터전을 잃게 된 소작인들이 일차적인 분노가 있었고, 배타적 종교관을 가진 유대 국가 수립이 또 다른 배타적 종교관을 가진 아랍인들을 난민으로 만드는 역설적 관계가 가져오는 이차적인 갈등의 폭증이 있고, 유대 국가 수립과 관련된 국제기구의 편파적 결정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길고 긴 분쟁의 마지막 원인이 되었다.

 

길게는 수천 년, 짧게는 수백 년간 유럽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 데에는 유럽의 오래된 반유대주의(anti-semitism), 근대의 민족주의와 시오니즘(Zionism)에서 그 역사적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반유대주의를 살펴보면 그 역사는 기원전 1세기경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 왕국(북이스라엘, 남 유대)의 붕괴 이후,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지역은 차례로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오스만제국 등 강대국의 식민지 통치를 받아왔고,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은 그리스, 로마왕국의 영토 확대에 따라서 지중해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흩어졌고, 유대인들의 유일신 사상은 다신교의 헬라 문화와 동화되지 못하고 헬라 문화권의 반유대주의를 낳게 되었다.

 

기독교 창시 이후에, 로마제국과 교회는 예수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유대교도들을 지속해서 핍박하였고, 소외시켜 왔다. 중세 유럽의 대부분 국가에서 유대교도들에게는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았고, 유대교도들은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도 없었으며, 직업 길드에도 들어가지 못하였다. 1096년 제1차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유대교도들에 대한 집단적 학살이 프랑스와 독일 등지에서 벌어졌고,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던 유대인들이 금융, 무역업에 투신하여 경제적 성공을 이루자, 이들에 대한 반감과 종교적 편견은 서유럽 반유대주의 정서를 고양했다. 1290년 영국을 필두로, 독일, 프랑스, 포르투갈 등 유럽 각국에서 유대인 추방이 일어났다. 특히 1492년 스페인에서의 대규모 유대인 박해는 서유럽 국가들의 유대인 추방운동의 정점을 찍었고, 기독교 개종을 거부한 유대교도들은 추방당하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박해가 적었던 폴란드, 러시아 등의 중·동부 유럽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1791년부터 1917년까지 유대인의 주거지역을 러시아국경의 서부 지역으로 제한(Pale of settlement)하였다. 1881년 러시아 황제의 암살 사건과 관련하여 200여 개의 도시에서 유대인에 대한 테러와 유대인 재산에 대한 약탈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는 러시아 정부의 묵인 속에서 조직적인 형태로 일어난 반유대인 폭동(pogrom)이었다. 유대인들은 반유대주의 폭동과 경제 제재를 피해서 러시아를 떠나야 하는 선택에 직면하게 되었다. 때마침 유럽에 불어온 민족주의 열풍으로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는 유대인 이민을 막았다.

 

1897년 헤르츨(Herzl) 은 제1차 시온 회의를 스위스에서 개최하고, 유대인의 생존을 위해서는 한 영토 안에 모여서 살아야 한다며 팔레스타인 이주를 추진하는 시온주의 운동을 펼치게 되었다. 헤르츨 은 당시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던 오스만 제국에 팔레스타인 자치권을 요구하였으나 거부되었다. 1903년 영국 정부는 우간다 지역에 약 15,500 평방 km의 땅을 대안으로 제시하였으나, 시온주의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1917년 영국은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국가 설립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게 되었고, 1922년 이를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Palestine Mandate)을 통해 재확인하게 되었다. 밸푸어 선언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 국가 건설을 지지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의 비유대인 시민권과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이집트에 있었던 영국의 멕마흔 고등판무관은 1915년과 1916년 사이에 아랍의 대표를 자임하던 메카의 후세인과 오스만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서신을 주고받았는데 그 주요 내용은, 아랍은 오스만제국에 대항하고, 향후 영국은 이집트 동쪽의 아랍어권 지역의 아랍독립 국가 설립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팔레스타인 땅을 양쪽에 약속한 영국의 이중외교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근본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인들은 당초 약속과 달리,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국가가 설립되는 것을 우려하여 시오니즘에 반대하고 이를 지지하는 영국 정책에 반대하였다. 아랍인들의 반영 시위는 1936-37년에 정점에 달했고, 1939년 영국은 이에 반응하여,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민을 금지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자 시온주의자 유대인들은 영국에 대한 테러와 암살을 자행하고 팔레스타인으로의 유대인 불법 이민을 조직적으로 수행하였다.

 

1947년 국제연합(UN)은 유엔총회 결의안 제181호에 의해 팔레스타인지역을 아랍국가, 유대인 국가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을 어느 한쪽이 지배하지 않는 국제지역으로 두는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제안하였다.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의 1/3에 불과하고 소유 토지는 전체의 7%에 불과했던 유대인이 전체면적의 56%를 차지하게 되는 UN 안을 팔레스타인 아랍인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유대인들은 UN 안을 받아들여서 1948년 5월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 국가를 설립하였고, UN 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아랍 연합국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제1차 중동전쟁을 일으키게 되었고, 그 후 2차, 3차, 4차 중동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을 맺고,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치하에 두기로 했으나, 평화협정에 서명한 이스라엘의 라빈 수상이 1995년 유대주의 극우파에 의해 암살당하고, 1996년 평화협정에 반대하는 하마스의 자살테러로 오슬로 협정은 유명무실해졌다. 현재의 상태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부르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식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정파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지만, 이는 서안 지역을 통제하고 있을 뿐,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실질적인 통치를 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나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의 공존을 모색하지만, 하마스는 이스라엘과의 공존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현재의 사태를 확대하지 않기 위한 이스라엘과 미국의 의도적 노력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는 단어에 들어가 있다.

 

표면적으로 두 국가 해법을 이스라엘이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유대 근본주의 극우파의 지지를 받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군사력을 갖춘 팔레스타인 국가는 결국 이란의 지배를 받는 위성국가의 탄생이기에 용인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주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이번 하마스 테러의 배후 국가로 지목받고 있다. 이란은 반미-반이스라엘을 선두 주자로, 미국의 중동 평화안에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고 있으며, 이슬람 시아파의 종주국을 자처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의 중동 평화안을 지지하며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를 통한 평화적 해법을 지지하는 사우디는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사우디-요르단 등을 엮는 친미 벨트의 구축으로 중동 평화를 모색했으나, 이스라엘-사우디 국교 정상화로 설 자리를 잃을 것을 두려워하는 하마스의 테러로 인해 미국 주도의 평화 구상은 물 건너간 듯 보인다. 이란과 하마스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가까워지는 것을 막고, 아랍 더 나아가 무슬림 세계가 반이스라엘, 반미로 단결하게 만드는 것이 이번 전쟁의 목표일 것이다. 이 전쟁은 또한, 이스라엘 애국주의를 부추겨서, 이스라엘의 극우 정권이 정상 국가로 돌아가는 과정을 더 늦추게 할 수도 있다.





[기자칼럼] 렉카유튜버, 혐오가 돈이 되는 세상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고, 양방향 소통 매체인 유튜브가 한국 사회의 중심이 되면서 ‘유튜버’는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하나의 직업이 되었다. 시청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영상을 올리고, 시청자가 해당 영상을 클릭함으로써 발생하는 수익을 통해 부와 명예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를 악용하는 소위 ‘렉카유튜버’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렉카유튜버’는 특정인에게 일어난 이슈나 사건 등을 영상화하여, 해당인을 모욕하고 비난하는 유튜버다. 과거엔 사건을 전달하는 역할만 한다는 점에서 이슈유튜버로 정의됐지만, 사건에 대해 모욕과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난폭운전으로 사고 현장에 달려오는 렉카(사설 견인차)와 비슷해 렉카유튜버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이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타인의 이슈를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된 정보를 전달해 이득을 취하려 하기 때문이다. 확인되지 않은 허위 정보라도 단독으로 내용을 전달하면, 유튜버의 수익과 직결되는 조회수가 증가하고 ‘진실을 밝히는데 기여하겠다’는 후원자가 생기기도 하는 등 이들에게 경제적 이익이 발생한다. 심지어 정기로 고액을 후원하는 시청자도 심심치 않게 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