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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와 소매치기

지금부터 26년 전 비엔나 역에서 겪었던 이야기이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는 모든 음악인이나 음악공부를 하고자하는 음악학도라면 누구든지 한 번쯤 꿈에 그릴 만큼 꼭 가보고 싶어 하는 음악도시이다. 나도 미국유학 중이던 1982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유럽에 있는 음악나라들을 여행할 기회를 가졌었다.

여름이었던 터라 짧은 바지에 모자하나 눌러쓰고 여행용 가방을 끌고 비엔나 역을 나오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헬로우’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약속된 사람이 없었기에 그냥 가고 있었는데 또 ‘헬로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아니겠지’하고 생각하면서 뒤를 돌아보는데, 미국인인지, 유럽인인지 ‘헬로우’하면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새벽의 비엔나 역이었지만 얼핏 보기에도 칼자국 등등 인상이 험악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얼핏 마음속으로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현금이(물론달러임) 얼마나 되지?’하고 생각해보니 20여 달러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남자는 나에게 “너 비엔나 방문이 처음이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는 나
를 데리고 역구내에 있는 ‘바’로 들어가서는 와인 두 잔을 주문하고서 “처음 비엔나를 방문하는 기념으로 축배를”이라며 건배를 하는 것이다.

‘참 묘한 경험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를 대하였다. 그는 자기는 지난 2년여 동안 비엔나 역을 중심으로 소매치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손으로 탁 트인 2층 베란다 쪽을 가리키며, “저 경찰들이 우리의 소매치기를 알아차리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쪽을 보니까, 정말로 우리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곧,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하면서 비엔나에서 통용되는 각종 동전을 하나씩 챙겨서 “선물이야”하며 내게 건네주었다. 그는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자기도 한국전에 참전했다고 하면서, 한강과 이태원도 얘기했다.

지면관계로 글을 줄여야 하지만 정말 잊을 수가 없는 여행 경험담이다. 영원히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때로는 혼자 그 때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 때 그 경험이 너무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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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