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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의미하는 힐링이 사회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사회 곳곳에서 힐링 관련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모 방송국의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외에도 연예인의 이름을 딴 힐링캠프는 물론 힐링이라는 단어가 일상에서 난무하고 있다. 이처럼 각종 프로그램과 일상어에서 힐링이 유행하는 것은 그만큼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치유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힐링이 사회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은 것은 단순히 현대인이 상처를 많이 받고 살아가기 때문이 아니라 현대인들의 상처가 개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중요한 사회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사회든 상처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문제는 상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이다. 그런데 지금 유행하고 있는 힐링 프로그램은 직접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힐링 프로그램을 통해 상처를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다. 학생들과 상담하면 대부분 상처를 안고 있지만, 그 학생의 상처를 직접 치유할 수는 없다. 학생의 상처를 듣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치유 효과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무도 예외 없이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나무의 상처는 사람보다 훨씬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나무의 껍질과 가지를 보면 상처 없는 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더욱이 간혹 죽은 나무의 속을 보면 상처의 흔적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무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상처는 반드시 치유할 필요는 없다. 상처 중에는 치유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치유만이 반드시 옳은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상처 없이 살아가길 바라는 것은 요행과 같다. 상처가 두려워서 적극적으로 살지 않는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존재도 없다. 나무는 그 어떤 상처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풍상과 당당하게 대면한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받지만 그 상처를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간다. 상처가 모든 생명체들의 삶에서 피할 수 없다면, 상처마저 삶의 에너지로 삼아야 한다.

상처는 단순히 치유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원동력이다. 살면서 받은 상처를 오로지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치유받길 바란다면 영원히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나무는 자신의 몸속에 자리 잡은 상처의 흔적인 옹이를 통해 험한 세상을 살아간다. 만약 한 존재에게 나무의 옹이 같은 상처가 없다면, 상처가 두려워서 없앤다면, 결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깊은 상처가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처는 한 존재를 강하게 만들 뿐 아니라 지혜롭게 만든다. 상처는 한 존재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그 고통 속에서 지혜의 싹이 훨씬 힘차게 돋는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학생을 만나면 가슴이 아프지만, 나는 결코 슬퍼하지 않는다. 나무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상처를 치유하듯이, 사람도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상처가 삶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시기는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때이다. 나무는 자신의 상처를 결코 숨기지 않는다. 상처를 숨기는 것은 자신의 삶을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처는 결코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니다. 삶은 곧 상처의 흔적이자 과정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부정하는 존재이다. 상처를 인정할 때 세상에 가치 있는 자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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