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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디어 대한 맹신, 시민의 능동적 참여로 극복해야

미디어가 부모나 교사의 역할을 일정 부분 대체한 지 오래다. 부모에 안겨 스마트폰 영상을 응시하는 아이의 눈길과 강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휴대폰으로 해결하려는 학생들의 손놀림을 보면 어쩌면 상상하는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이제 미디어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의존하는 미디어는 세상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우리를 끊임없이 교육시킨다. 이로 인해 이용하는 미디어 채널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도 특정한 방향으로 고정되고, 유사한 신념과 가치체계로 이어진다. 그래서 보수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의 인식은 보수적 생각으로 이어지고, 진보적인 사람은 자신과 유사한 성격의 매체 이용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면서 사유의 편식은 더욱 강화되고, 자신이 이용하는 미디어가 현실이 되고 진리처럼 받들어진다.

 

하지만 미디어가 다루는 현실은 지속적으로 중재되고 가공되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미디어가 생산하는 내용에는 미디어 조직의 이윤이나 정치 권력적 욕망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개입되고 주관적 해석과정이 관여한다. 동일 사건이나 이슈에 대해서도 매체마다 바라보는 대상이 다르고 설명이 차별적인 이유이다.

 

나아가 미디어는 다양한 편견을 조장하여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도 한다. 모호하거나 극적인 언어 사용을 통해 사람들의 이해를 방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침내’, ‘거부했다’, ‘시인했다’, ‘회피했다’처럼 나쁜 행위를 암시하고자 감각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표현이 있고, 사람들을 자극하고자 ‘~라고 말했다’ 대신에 ‘격노했다’, ‘혹평했다’ 등으로 진술하기도 한다. 나아가 특정 기간에 대한 언급 없이 ‘~라는 주장을 오랫동안 펴 왔다’라고 말하거나 출처를 인용하지 않고 사실처럼 진술하는 근거 없는 주장들도 빈번하다. 미디어의 관점을 관철하고자 ‘위험한’, ‘극단적인’, ‘의심스러운’ 등과 같은 주관적인 수식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편견을 조장하는 가짜뉴스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현실을 다루는 미디어의 불완전성을 이해하려면 특정 미디어에 대한 의존보다 다루는 대상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디어가 쏟아내는 깊이 없는 내용과 이에 근거한 섣부른 판단에 앞서, 동일 대상에 대하여 전달된 다양한 내용을 취합하고 분석하는 미디어 이용자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각각의 입장과 관련된 증거들을 확인하면서 정보의 품질을 평가하는 창의적 미디어 이용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통해 미디어의 편향, 억측, 그릇된 논리 등을 판단하면서 관련 미디어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정보 홍수(information overload) 현상을 고려하면 능동적인 미디어 해독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literacy) 향상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시민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미디어의 자정 노력을 마냥 기대하기보다 깨어있는 미디어 이용자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 수동적이기보다 미디어 활동을 감시하면서, 지지 혹은 비판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때 시민을 상대하는 미디어의 경각심이 높아질 수 있다.

 

미디어 기술의 발달로 시민들의 다양한 피드백이 가능한 현실을 고려하면, 미디어에 대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주체적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미디어의 품질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한 부분이 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시민들의 능동적 참여는 미디어가 결정하는 현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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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