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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 상류사회(2018)

하한선부터 지키자

­상류층에 관한 이야기라면 대개 ‘위’를 쳐다볼 때의 호기심에 집중되곤 한다. 과연 보통 사람들과는 얼마나 다르게 사는지, 얼마나 화려한지 등등 ‘특이점’을 찾고 싶어 하는 것도 포함된다. 물론 바탕에는 깊고 강렬한 선망(羨望)이 들어있다. 부럽지 않다면 관심이 갈 리 없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계급 혹은 계층은 있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문제는 사회경제적 ‘차이’가 엄존한다는 사실이 아니고, 각자의 맡은 바 역할을 왜곡시키거나 착각하는 데서 온다. 지금 우리 사회 상류층의 문제는 하한선(下限線)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하한선의 사전적 풀이는 “최대한으로 낮아지거나 내려갈 수 있는 정도나 지점”이다. 더 이상 떨어지면 안 된다는 뜻이다. 재벌가나 고위층이 범죄에 해당하는 물의를 일으키면 언론은 앞 다퉈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임과 의무로 통용되는 이 낱말은 실상 우리의 현재 상태로는 어불성설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적정선에 대한 한 모범에 가깝다. 적정선이라 함은 상한선과 하한선 사이 어디쯤의 절충이겠다. 그런데 하한선이 아예 없다면, 아무리 추락해도 바닥이 없다. 이는 끔찍한 사회적 재앙이다. 기준점조차 없는 ‘가진 자’들의 행패는, 만인을 불행에 빠뜨리기 십상이다. 법은 선(善)이 아니고 그저 하한선일 뿐이다. 최저임금은 생존을 위한 하한선을 지키려는 합의된 노력이다. 지금은 단어에 대한 용례부터 바로잡아야 할 때이다. 


변혁 감독의 9년만의 신작 <상류사회>는 그 점을 통렬히 일깨워준다. 상류층을 그리는 데 초점을 둔 게 아니라, 재능 있는 ‘수재’들이 어쩌다 일생에 한 번 상류로 올라갈 동아줄 비슷한 기회를 잡았을 때의 욕망과 ‘낭패’를 다루고 있다. 재벌이 운영하는 미술관 부관장인 아내와 정치 신인인 남편. 오직 상한선 없는 질주 끝에 상류층으로의 도약 문턱에서, 그들이 본 것은 하한선 없는 금빛 거미줄에 걸려 꼼짝달싹 못하는 자기 자신이다. 운이 억세게 좋아 거기까지 왔다고 여겼건만, 계략이었다. 물론 시작은, 유혹 앞에서 사심을 품은 데서부터였다. 전 존재를 걸고 상류사회 입성을 꿈꾼 ‘머리 좋은’ 부부는, 인과율로 이어진 까마득한 추락 앞에서 결단을 내린다. 계속 ‘보여지는 삶’에 집착하는 한은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추악하고도 아름다운 세계’를 “원래 재벌들만 누리는” 것으로 독식하려는 탐욕이야말로 강고하다. 담장 밖과는 나누려 하지 않는다. 나누지 않아도 좋으나, 대신 하한선은 지켜져야 한다. 모두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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