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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5호 미디어평론] 바람의 색(2017)

우리가 만났다는 것은

사랑은 어렵다. 사랑 이야기는 이 어려움을 한도 끝도 없이 증폭시키곤 한다. 얼마나 극적인 결함을 안고 있는지가 그 사랑의 애절함을 가늠케 한다는 듯이. 멜로는 갈수록 추락과 상승의 낙차 폭이 커진다. 그러나 험난함은 사랑을 가로막지 못한다. 모름지기 모든 사랑이야기는 결국 탈출의 서사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안온했던 모든 것이 실상은 벽이었음을 깨닫고 높다란 담장을 뛰어넘은 마지막 몸짓 그대로 연인들은 불멸로 남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대표적이다.

영화 <바람의 색>은 일본 배우들이 등장하는 한국 감독의 영화다. ‘멜로 장인’ 곽재용 감독이 마술과 도플갱어 등 초자연적인 ‘신비’들까지 동원해 사랑의 본질을 치열하게 탐구한 독특한 신작이다. 천재 마술사 ‘류’는 세계 최초 탈출 마술 공연 중 예기치 않은 사고로 탈출하지 못해 연인 ‘아야’(후지이 타케미)와 이별한다. 연인 ‘유리’와 이별 후 무의미하게 살던 ‘료’(후루카와 유우키)는 뉴스를 통해 자신과 닮은 ‘류’의 실종소식을 듣고, 운명처럼 홋카이도에서 ‘유리’와 꼭 닮은 ‘아야’를 만나게 된다. 이야기도 마술처럼 매혹적이지만 홋카이도 바다의 유빙(流氷)이 압도적 장관인 판타지 로맨스다. 곽재용 감독이 인터뷰에서 남긴 말들도 인상적이다. “빈 공간을 돌고 도는 바람이 비록 눈에 보이진 않지만 존재하듯,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고 색이 없어도 가슴으로 느끼는 것”

사랑은 왜 신비한가. 사랑은 마술보다 과격한 행보와 마술사의 손놀림보다 더 빠른 변신을 통해 연인들을 혼돈에 빠뜨린다. 때로는 정체성조차 산산이 깨져나간다. 그럼에도 사랑 하는 마음이 곧 얼어붙은 바다에도 길을 내고, 잃어버린 열쇠도 되돌아오게 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유지하기란 때로 목숨을 부지하는 일보다 힘겨워 보인다. 사랑은 그 정도의 각성을 요구한다. 죽었다 살아 돌아오는 정도의 사생결단이다.

열쇠는 자기 안에 있다. 대신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진정한 ‘마술’을 터득해, 자기 안의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해야 한다. 문제는 가까스로 찾아내봤자 설계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도면을 입체로 구현해 ‘탈출마술 쇼’를 성공시켜 주는 것은, 본인이 아닌 연인이다. 영화는 도플갱어 설정으로 인해 얼핏 심각한 삼각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매혹적인 메타포다. 과거의 자신이라는 껍데기를 벗어야 하는 일종의 재탄생이 곧 사랑의 숙명이다. 이 세상 가장 무겁고 두터운 갑옷인 ‘나’라는 철옹성을 뚫고 들어온 사랑은 본질적으로 탈출마술이다. 어떤 바람은 바다를 뒤집고 하늘을 물들인다. 그 색의 황홀한 비밀은, 오직 탈출마술을 감행해본 이들에게만 신이 선사하시는 ‘환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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