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봄에 어울리는 영화다. 마치 영화가 봄을 불러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봄날의 온기는 겨울을 견딘 후에야 받는 선물이기에 더 감미롭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임순례 감독)는 겨울은 어떻게 나야 하는 것인지, 봄과 여름과 또 가을은 어찌 ‘먹고 사는’ 게 좋을지를 한 사람의 사계절을 통해 생각해 보게 한다. 취직은 고사하고 뭐 하나 되는 게 없어 배고프고 괴로운 ‘타향살이’의 고비에서, 주인공 혜원(김태리 분)은 가방을 싸 텅 빈 고향집으로 내려온다. 한겨울이었다. 눈밭의 언 배추를 다듬어 배춧국을 직접 끓여먹은 후 마치 이렇게 해 먹으러 예까지 온 사람처럼 살면서 계절들을 통과한다.
안 풀리긴 하지만, 열심히 살지 않은 건 아니다. 억울하기로 따지자면 한이 없지만, 일단은 김장독 묻듯이 마당 한편에 ‘서울’에서의 사연들은 치워둔다. 정답이 뭔지는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는지도 역시 모르겠다. 그저 (엄마가 그러셨듯이) 하루하루 정성을 기울여 한 끼의 밥을 짓고 제철 음식들을 손수 마련한다. 잠시만 있으려던 게 그렇게 사계절을 온전히 살아내게 된다. 오랜만에 다시 한동네에서 지내게 된 소꿉동무 재하(류준열 분)와 은숙(진기주 분)이 주는 위안과 힘도 크다. 농사꾼이 되려는 것도 도시에 안착하려는 것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서 혜원은 자신만의 성장과 모색을 거듭한다.
그렇게 살다보니 문득 깨닫게 된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릇의 크기가 아니라 자기 그릇을 얼마큼 채웠느냐는 점일 터다. 간장종지여도 그득 채워지면 넘치게 마련이다. 넘치는 것들은 자연스레 주변을 위해 쓰인다. 이 영화에는 그런 에너지의 흐름과 쓰임이 담겨 있다. 무릇 모든 건강한 것들은 생명의 기운을 넘치게 뿜어낸다. 그 집 자체에 이미 사계절의 순환이 주는 풍성함이 깃들어 있다. 절로 익어 맛이 든 감동이다.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다는 애틋함이 관객의 가슴 속에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간이다.
고향이 있어도 없어도 우리는 늘 ‘고향’을 그리워한다. 어떻게든 지키려 하는 그 고향의 본질은,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준 너그러운 속성에 있을 것이다. 이 순박해 보이는 영화는 알고 보면 배포 두둑한 상상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땅의 소산이며 대지의 여신들이 키운 자식들이다. 얼핏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의 모녀관계 느낌도 난다. 본디 신화의 진정한 맛은 각색과 재해석에 있다. 하데스 같은 음습한 폭력의 기운이 사라진 새 땅에서 엄마도 딸도 각자의 성장을 위해 떨어져 지냈으나, 땀과 정성을 기울이는 동안 땅에는 소출이 부엌에는 제철 요리가 넘쳐난다. 수많은 손길의 수고로움으로 잘 차려진 밥상을, 이제는 음미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