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가버린 사람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사형제도가 폐지돼야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 불가역성(不可逆性)에 있다. 인간의 오판가능성이 제로가 되지 않는 한, 사형집행은 언제든 억울한 죽음을 유발할 수 있다.
군사독재시절을 거치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법의 이름으로 참살 당할 수 있는지를 목도했다. 1975년의 ‘인혁당사건’은 그 끔찍한 사법살인의 전형이다. 사형이 선고된 지 18시간 만에 여덟 사람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2005년 말에 이르러서야 독재정권의 농간이고 조작이었다는 공식조사발표가 이루어졌지만, 그 명예회복의 결과란 참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당사자들이 이미 죽고 없는데 누가 무엇으로 그 원통함을 갚아 줄 수 있단 말인가?
36년 만에 살인혐의를 벗고 무죄 판결을 받은 정원섭 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수십 년 동안 강간살인범이라는 낙인 때문에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15년의 억울한 옥살이는 그의 인생을 앗아갔고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살아서 누명을 벗고 해원(解寃)했다. 어쨌든 살아남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론이 다시 들끓고 있다. 강호순이라는 한 명의 ‘살인마’를 빌미로 2009년 벽두부터 사형집행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다. 김영삼 정권 말기인 1997년 12월23일, 23명이 사형된 후 만 11년째 사형집행이 없었다. 이것은 자신의 정적에게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 이후에 얻어낸 명예로운 결실이다.
그러나 11년간의 ‘실질적 사형 폐지’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다음 정권의 철학이 무엇이냐에 따라 얼마든지 물거품이 될 수 있는 한시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사형제를 지지해왔다. 사형 집행 자체를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그리고 집권 1년 만에 세상을 발칵 뒤집은 살인마가 나왔다. 지난 1년 동안 이명박 정권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은 엄정한 법질서와 무관용 원칙이었다. 평범한 시민들도 법을 지키면 않으면 죽어도 싼 판국이다. 그간 사형집행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강력범죄가 늘어났다는 원색적이고 비과학적인 기사와 논설들이 연일 언론을 장식했다.
지난 1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사형집행이라는 강력한 법으로 타개해보겠다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정부는 살인마의 잔혹성을 ‘이메일 지시’까지 내려가며 선정적으로 보도한 뒤 여론조사를 앞세워 여론을 사형집행 재개 쪽으로 유도하고 있다. 국민의 절망과 분노를 피로 타개해 보겠다는 술수이다. 그러나 사형이 집행돼 범죄율이 줄어들었다는 통계는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입증된 바 없다. 피를 피로 갚아 되돌아 올 것은, 현 정부의 법 집행에 날개를 달아주는 결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