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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평론] 뺑반

- 불변(不變)이라는 악

영화 <뺑반>의 세계는 불안정하다. “피와 기름이 범벅된 냄새”가 구토부터 유발하는 뺑소니 전담반원들의 현장은 끔찍하다. 교통사고는 일상적인 것 같지만 실상 개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혼돈 그 자체임을 강조한다. 안정적인 인물은 전직 경찰이자 현직 정비공인 서정채(이성민 분)뿐이다. 모든 인물이 혼돈 속에 내던져진 이 ‘카체이싱’을 즐기기로 했느냐 아니냐의 여부로, 호불호는 갈렸을 듯하다. 나로서는 매우 반가운 혼란스러움이었다. 


등장하는 남녀의 성향은 물론 권력관계나 권력 쟁취 방식은 기존의 영화들과 다르다. 섬세하게 ‘축’이 옮겨져 있다. 남성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붕괴’되어 있다. 겉모습뿐 아니라 내면까지도 영화가 전개되는 동안 남김없이 깨져나간다. 여기서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오랜 ‘동일성’에 집착하며, 무슨 수를 써서든 ‘나’로 남겠다는 광란의 장본인이 정재철(조정석 분)이다. 그래서 그는 점점 더 악에 경도된다. 재철은 ‘바뀌지 않겠다’는 아집을 타인들을 희생시켜가며 강요하고 관철하는 ‘절대자’로 군림한다. 상대방의 머리통을 전기 드릴로 뚫을지언정, 자기 생각을 수정할 마음이 없다. F1 레이서 출신의 자수성가한 재벌이지만 미성숙한 재철은 교회 장로 직을 겸한 경찰청장(유연수 분) 앞에서는 어린 아들처럼 굴고, 윤과장(염정아 분)에겐 철없는 동생처럼 군다. 그 와중에 ‘돈 주는 자’의 만용을 부린다. 텅 빈 권좌의 허망함을 무제한 질주와 무차별 폭력으로 달래며 ‘방해물을 제거’할 때만 쾌감을 느끼는 듯하다.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는 게 곧 죄악이다.  


은시연(공효진 분) 경위가 영화 전체의 밀가루 반죽 같은 역할을 자처한 것이나, 남성 주인공들이 ‘결핍’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지 주목했다는 점에서 <뺑반>은 독특한 여성주의 관점을 지녔다. 한준희 감독의 전작 <차이나타운>과도 이어진다고 본다. 서민재(류준열 분)는 사랑을 가르쳐준 은인을 만나 심지어 성(姓)도 바꿨다. 인생을 ‘재탄생’시킬 유연함을 지녔다는 점에서 민재 캐릭터는 이 영화의 눈에 띄는 성취다. 기존의 관행을 답습하지 않는 삶은 특히 남성 입장에서 뼈를 깎는 용기다. 교정과 자기회복을 향한 ‘카체이싱’ 장면에서 헐리웃 블록버스터와 달리 운전자의 감정이 읽혔던 점도 이 영화가 밀고나간 신념이라고 본다. 


자신의 영혼이 (가부장적 압제 속에서 어린 시절 이미) 망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던 남자들만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 벨 훅스(bell hooks)는 책 ‘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THE WILL TO CHANGE, 2004)’에서 숱한 남자들이 “내 안에 빠져 있는 어떤 것”이라는 말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할 때의 자기 기술(自己記述)’을 슬프게 고백한다고 썼다. 감정을 차단하고 가부장제 속으로 편입된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비통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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