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예술학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정권이 바뀌면 학과의 존폐여부도 교수의 ‘성향’도 커리큘럼도 ‘알아서’ 바뀌어야 한다. 이 때문에 문화체육부였던 시절에 세워진 한국예술종합학교는 문화관광부의 철퇴를 맞았다.
지난 5월 18일, 문화관광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감사 결과를 언론에 알리면서, 이 학교가 문화관광부 ‘소속’이며 유인촌 장관의 직접적인 권한 내에 있음을 온 세상에 천명했다. 감사 결과에는 ‘이론과 축소 폐지, 서사창작과 폐지, U-AT 통섭 교육 중지 및 관련 교수 징계’ 등 12건의 주의, 개선, 징계 처분이 들어있었다. 다음날 황지우 총장은 자진 사퇴했다. 교수직까지 박탈당한 황 전 총장은, 이번 2학기 수업을 강사자격으로 신청했으나 학교당국으로부터 ‘교수 지위 확인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강의 불허를 통보받았다.
현재 ‘한예종 사태’는 박종원 신임 총장 체제로 가면서 겉으로는 일단락된 듯하다. 그러나 학생들은 여전히 술렁인다. 학교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는가에 대한 깊은 회의, 지금껏 훌륭한 예술가로 존경해 왔던 스승들에 대한 ‘자질 시비’ ‘사상 시비’가 이미 학생들의 마음을 갈래갈래 찢어놓았다.
사실 이번 사태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예고된 일이었고, 유인촌 장관은 인사청문회 말미에서 ‘돈키호테’ 대사를 읊으며 각오를 피력한 바 있다. 그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며 풍차와 싸우고 비웃음을 살지언정 ‘충실한 기사’가 될 것을 기사로 뽑아주신 분과 전 국민 앞에 서약했다. 한예종은 분명 유 장관이 세심하게 감사를 하고 싶어 할 만한 곳이었다. 이 학교가 표적이 된 것은 ‘성과’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감사를 한 이유에서도 천명했다. 성과 때문이 아니라 ‘성향’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한예종 사태는 참으로 통탄스럽다. 예고된 사태를 예고된 각본에 휘말려 예고된 수순으로 진행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현실은 답답할 뿐이다.
이 학교의 본연의 임무는 예술가를 길러내는 것이다. 그것 이외의 것에 마음 쓰지 말고, 그것 이외의 것에 힘을 써서는 안 되는 어려운 시점이었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을 주변관리는 필수였다. 말도 안 되는 빌미라는 억울함도 없지 않겠지만, 어쨌든 권력에 빌미를 주었다. 무엇이 빌미가 될지 알면서 차단하지 못한 것도 실책이었다.
이번 사태는 한예종 학생들뿐 아니라 이 땅의 수많은 예술가 지망생들의 자존심에 큰 흠집을 냈다. 33회 MBC <대학가요제> 본선에 오른 한예종 ‘겨울모기’팀의 노래 ‘괜찮아(언제까지나 널 사랑할 건 아니었으니까)’는 묘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그래, 다 괜찮다, 언제까지나 학교만 다닐 건 아니지 않은가! 부디 모두들, 위축 되거나 상처받지 말기를. 예술가의 길은 어차피 비단길이 아니다. ‘자비로운’ 권력의 후원으로 지탱되는 길이 아니다. 예술가가 할 일은 그 무엇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실력을 쌓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