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사람이 배반할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있다면 밥과 어머니일 것이다. 탯줄과 밥줄, 그 숭고함을 모르는 자는 무지(無知) 속에 악행을 저지른다. 그런 점에서 고우영 화백의 <일지매>는 탁월하다. 탐관오리를 털어 가난한 이에게 대가 없이 나눠주는 그는 영원히 의로운 영웅의 전형이다. ‘일지매’ 본인이 사라져도 그의 뜻만은 매화 향기와 함께 남기 때문이다.
MBC 수목드라마 <돌아온 일지매>(극본:김광식,도영명/ 연출:황인뢰,김수영)는 우직하게 고우영 원작을 영상에 옮겼다. 원작의 유명세도, 만화를 영상으로 옮기는 일도 쉽지 않은 장애물이었다. 시청률은 첫 방송 후 줄곧 하락세였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황인뢰의 <돌아온 일지매>는 시청률과 상관없이 그의 필생의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본인이 거듭 밝혔듯이 황인뢰는 액션활극이 처음이다. 멜로의 거장으로 작품마다 주목 받았던 왕년의 명연출자 대신, 그는 용감하게 ‘신참’의 길을 택했다. 한국 드라마로서는 드물게 ‘초지일관’ 제작의도를 밀고 나갔다. 사전제작 70%의 성실함은 24회 전편을 안정감 있게 끌어갔다.
하지만 <돌아온 일지매>는 시청자의 눈과 귀를 제대로 훔쳐내지 못했다. 일지매와 첫사랑 달이가 산 속을 노닐며 메밀꽃 흐드러진 달밤 데이트를 하는 장면 등은 공들여 찍은 영상미가 압권이다. 황인뢰는 역시 멜로에 강하다. 그러나 문제는 멜로의 호흡이 따로 있고, 활극의 호흡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일지매처럼 복잡다단한 이야기는 장르도 섞여야 하고 극의 호흡도 ‘그때그때 달라야’ 제 맛이 난다.
<돌아온 일지매>는 활극의 기본인 ‘맥박’을 놓쳤다. 만듦새는 괜찮은데 전반적으로 한 박자씩 늦어 지루했다. 액션을 본격적으로 선보일 땐 좀 낫지만, 극 전체가 고른 호흡으로만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활극이 아니다. 차라리 한 소년의 성장드라마였다. 황인뢰가 놓친 이 포인트는 공들인 작품을 대단히 애석하게 만들고 말았다.
백성(百姓)의 시름은 언제나 ‘먹고 사는’ 문제에 매여 있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이며 생명체의 영원한 숙명이다. 예나 지금이나 고통의 근원은 늘 ‘분배’에 있었으며, 더 많이 탐하는 자의 축재(蓄財)는 무수한 사람들의 밥줄을 끊은 대가일 뿐이었다.
MBC <돌아온 일지매>는 그 ‘도둑질’ 자체가 아닌 생의 번뇌와 슬픔에 주목했다. 고통 속에 성장하는 미소년 일지매(정일우 분)는 그 어떤 일지매보다 ‘배려’할 줄 아는 인물이 됐다. 정일우의 선한 얼굴은 타인의 고통을 차마 지나치지 못하는 공감능력을 갖춘 자상한 일지매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원작보다 모질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비정하게 굴지 못한다. 아무리 옳은 일일지라도 남의 상처를 최소화하려 애쓰는 정일우 일지매의 선량함은 미덕이다. 단호한 것은 ‘법질서’와 ‘원칙’뿐인 현 상황에서 새겨볼 만하다. 고위공직자들의 이기심과 공감능력 부재가 사회악의 근원이 되고 있는 요즘 세상을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