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드라마에는 대중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더듬이가 있다. 특히 인기 드라마일수록 이 더듬이가 대중이 바라던 어떤 것과 정확히 일치 혹은 소통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드라마의 경우 여성 시청자와 남성 시청자의 호불호가 판이하게 갈리는 경향이 짙다. 물론 드라마는 당연히 여성의 마음부터 사로잡아야 뜬다. 여기에 더해 남성들한테서도 재미있다는 반응을 얻는 드라마가 있고, 남성들에게 일종의 적대감을 주는 드라마가 있다. 로맨스일수록, 이런 양상이 심해진다. 남자 주인공이 너무 멋지거나 못하는 게 없는 능력자고 모든 여자가 반할 캐릭터라면, 남성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다. 대다수 남성이 불편해한다. 여자들이 ‘비현실적’으로 멋진 주인공에 빠져, 현실의 남자들을 외면할까봐 두려운 것일까.
SBS 수목 미니시리즈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 딱 이런 경우다. 극중 김수현이 맡은 배역은 서기 1609년 조선 땅에 온 외계인 도민준이다. 도민준은 늙었는데 외모는 젊다 못해 새파랗다. 남자의 가장 젊고 푸른 상태를 한결같이 유지해왔다. 게다가 지구에 떨어졌을 때 처음 본 소녀를 잊지 못하고 400년간 마음속에 고이 간직했다. 이보다 더한 순정은 없다. 그런 어마어마하다 못해 무지막지한 사랑이 천송이(전지현 분)를 향한다. 아니, 실제로는 천송이에 감정이입한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외계인과의 사랑이라는 설정은 사랑을 증폭시키고 애달프게 만드는 요인일 뿐, 드라마에 몰입하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묘한 개연성이다. 한 마디로 못하는 게 없는 슈퍼맨에 가깝지만, 도민준의 진정한 ‘초능력’은 따로 있다.
도민준은 여자의 말을 정말 잘 ‘듣는’다. 도민준은 자기가 사랑하는 천송이의 말을 언제 어디서고 듣는다. 시간을 멈추는가 하면 순간이동 능력까지 동원해 천송이를 모든 위험으로부터 구해낸다. 그는 여자의 말귀를 잘 알아들을 뿐 아니라, 그녀가 원하는 소망을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잘 들어주는 남자다. 여성 시청자들이 도민준에 그토록 열광한 이유다. 서로 잘 듣기 때문인지, 도민준과 천송이는 대화술의 달인들처럼 보인다. 말다툼으로 시작했어도 끝내는 사랑고백이나 애정표현으로 뒤바꿔 버린다. 대화를 통한 사랑의 화학적 변화가 매순간 일어난다. 이 사랑이 놀라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잘 듣고 잘 응답하기가 요원한 과제인 현실에 비춰 이거야말로 초능력이고 ‘외계어’ 같다.
마음까지 알아듣는 상대, 그런 소통이 주는 사랑의 일치감을 그리기 위해 (황당하기까지 한) 도민준의 400년 여정은 필요했다. 대한민국 드라마가 이런 ‘우주적’ 설정까지 끌어들이며 결국 확인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소통의 즐거움을 원하는가였다. 당연히, 모두 안다.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며, 도민준이 얼마나 공상적 존재인가도 말이다. 너무나 멋져 미래적인 이상형에 가깝긴 하지만, 도민준은 분명 사랑의 한 방향성을 ‘별’처럼 제시했다. 우리가 서로 만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쉼 없이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그것만이 오해와 단절 너머에 있는 ‘그대’를 찾아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