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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평론] 기생충(2019)

- 함께 살 새로운 ‘판’을 꿈꾸며

이렇게까지 좋은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게 된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았다는 반가움이 무엇보다 앞선다. 지금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지 막연했던 것을, 극장에서 영화를 마주하고 나니 비로소 또렷해진 느낌이랄까. 연기한 배우들조차 전체 그림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궁금하던 차에 시사회 직후 감탄사를 연발했다는 인터뷰가 빈 말이 아닌 듯하다. 올해 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사 100년의 ‘성취’로 우뚝 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Parasite)>이야기다. 


디테일에 철저하다는 봉 감독의 장기는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다만 “스스로 장르가 되고, 진화했다”는 공개적인 찬탄을 들었을 만큼 디테일에도 질적 변화가 일어났다. 단지 모든 장면에 완벽을 기한다는 게 아닌, 일정한 간격과 호흡으로 가상의 한 세계를 온전히 구현해냈다는 쪽에 가깝다. 약간의 허술함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꼼꼼함을 뛰어넘었다. 상상으로 그릴 수 있는 감당 가능한 선에서의 가장 커다란 ‘집’을 지었다. 대한민국의 한 부분을 떠냈는데, 세계 곳곳에서 온 영화인들이 모두 자기 나라 이야기라고 공감하며 세계 192개국에서 필름을 사갔다. 


이 ‘집’이라는 단어에는 주거공간이라는 뜻과 더불어 관념으로서의 집, 우리의 깊은 연원으로서의 상징적 의미마저 포함돼 있다. 집의 붕괴는 그래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공간의 처절하고 지독스런 분리 혹은 격리는 사는 환경의 열악함을 넘어서서 구성원들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의식구조를 만들고 지배하기 마련이다. 이 갇힌 벽들 너머로 어렵사리 오간 것이 ‘냄새’였으나, 서로 나눌 수 없는 누적된 갈등은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치닫는다. 이미 사회 곳곳에서 참변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칸에서는 <기생충>에 대해 한 마디로 “봉준호라는 장르영화” 라고도 했다. 감독에겐 각별한 기쁨을 준 말이었다고 한다. 탄탄하면서도 자유로운 이 영화의 상상력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면 “한국인이어야 뼛속까지 이해할 것”이라는 감독의 얘기가 몸소 느껴진다. 이 고유하고 독특한 영화의 리듬은 우리의 판소리를 닮았다. 클래식 선율이 정교하게 들어가 얼핏 서구적 보편성에 가까워 보이나, 경쾌하게 흘러가다 돌연 자진모리와 휘모리로 휘몰아치듯 몸을 바꾸고 그럼에도 서정적인 결말부로 관객을 애잔하게 흔들어놓기까지 한다. 이 가락은 우리의 맥박과 ‘심장’을 닮아 있다. 메시지와 형상화가 한 몸으로 엉겨 붙어 생생하게 구현된 영화 <기생충>이 진정 한국인의 삶의 이야기인 까닭이다. 함께 잘 살아가는 새로운 판을 위한, 새 꿈을 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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