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권력의 상속녀는 숨만 쉬는 상태로 누워있었다. 재벌의 딸이 자기네 병원 특실에 갇히게 된 사연이야 기구하지만, 돈과 의술과 하수인들의 헌신적 보살핌(혹은 치밀한 음모)으로 ‘3년간 누워 지냈는데도 욕창 하나 없는’ 상태였다. 이런 한여진(김태희 분)의 특실에 외과의 김태현(주원 분)이 배정 받는다. 동생 치료비 때문에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 ‘용한 돌팔이’다. 왕진에 장소불문, 환자불문이다. 돈만 많이 준다면 조폭도 몰래 수술해 주는데, 비밀도 잘 지키고 실력은 최고다. 과연 공주는 깨어날 것인가. 상처투성이의 ‘용팔이’는 잠자는 공주와 어떤 ‘멜로’를 펼칠 것인가. SBS 수목극 <용팔이>는 이런 기대감을 주었다. 결과는 시청률 대박이었다.
초반에는 김태희가 주인공인데 대사도 없이 누워만 있다고 핀잔을 들었다. 하지만 누워있는 자태만으로도 어찌나 아름다운지 시청률을 올리는 데 톡톡히 기여했다. 주원의 활약으로 드라마는 시청률을 계속 올려갔고, 5회에서 드디어 상속녀는 일어난다. 순간 시청률은 정점을 찍었다. 눈을 뜬 그녀는 그저 눈을 맞추고 대꾸를 하고 고개를 숙여 보이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정말 기발하고 아름다운 ‘스펙터클 멜로’가 탄생하는 듯싶었다. 아니 멜로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용팔이의 이중생활과 병원을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탐욕과 암투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과 화려한 액션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곧 표절 의혹이 터져 나왔다. <용팔이>와 만화 <도시정벌7>의 유사성이 제기된 것이다. 용한 돌팔이와 잠자는 상속녀, 이게 ‘만화방’의 전설 같은 신형빈 작가의 <도시정벌> 속에 이미 있는 에피소드라는 얘기다. 만화방 특히 <도시정벌>의 단골 고객은 남성들이고, TV드라마의 단골은 여성들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제작사는 “전체 그림을 무시한 채 일부 단면을 가지고 같은 내용이라고 주장하는 흠집 내기”라며 즉각 반발했지만, 어쨌든 ‘유사성’은 인정한 셈이다.
사실 드라마 표절 시비는 너무 잦은 일이며, <용팔이> 직전에 편성됐던 SBS <가면>과 KBS2 <너를 기억해>는 가장 최근의 사례다. 일단 주요 설정과 뼈대가 비슷하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초반에 (이미 흥행한 콘텐츠에서 따온) 파격적인 설정으로 시선을 잡고, 표절 의혹이 터지면 줄거리를 바꾸는 식의 드라마가 너무나 많았다. 아이디어 사용임을 밝히고 떳떳이 제작하면, 이야기도 더 탄탄해지고 모두가 상생할 수 있지 않을까. 오리지널을 굳이 고집하지 않아도 ‘창작’의 폭은 넓고 다양하다. 아이디어도 (부분적) 원작으로 인정하는 제도의 도입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