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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 ‘뻐꾸기 둥지’, 엄마는 없고 난자만 있다

- 강화된 ‘씨’의 감별과 핏줄 판타지

대한민국 모든 드라마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소재의 극대화와 진화를 위해 만들어지는 듯한 요즘이다. 마치 제작과정의 불변의 원칙처럼 보인다. 출생의 비밀 외에 뭔가가 더 들어가 줄 때 그제야 비로소 ‘장르’ 구분과 시대 구분이 생긴다. 아닌 것 같다고? 한 번 찬찬히 둘러보라. 적어도 현재 방영중인 지상파 드라마들은 출생의 비밀과 DNA 내지는 타고난 귀속지위의 ‘엇갈림’에 대한 코드가 주요 뼈대다. 바닥도 한계도 없이 마냥 진화중이다.

KBS <뻐꾸기 둥지>는 심지어 국민의 수신료로 유지됨을 내세우는 ‘공영방송’의 일일드라마다. 어떤 아이를 두고 ‘엄마’가 누구냐가 아니라 ‘누구의 난자’로부터 비롯되었느냐를 따지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난자들끼리의 충돌, 대리모라는 극단적 상황을 ‘애증’ 차원에서 다룬다. 과학 다큐가 아니다. ‘일상성’과 ‘평범한 보통 사람의 삶’을 기치로 내거는 저녁 일일극이다.

한 생명이 처음까지 거슬러 올라가 시청률 전쟁으로 오염시킨 꼴이다. 대한민국 드라마에 더 이상 자연스러운 출생의 기쁨이나 생명의 신비는 그려지기 어려운 것인가. 작위적이고 극단적 상황의 연속이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도 거짓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물론 출생의 비밀이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망한 드라마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만일 출생의 비밀을 ‘모든’ 드라마에 적용했다면, 이 소재가 ‘비결’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이제는 따져봐야 한다. 이는 정말 시청자의 취향에 대한 반응인가, 방송사들의 편성 원칙인 것인가? 만일 원칙이라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국익’이든 방송사의 수익이든,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수익극대화’를 위해 출생의 비밀은 이제 난자와 정자의 바꿔치기로까지 나아갔다. 난자의 주인은 이제 ‘엄마’가 아니다. ‘공여자(供與者)’쯤 되겠다. 황우석 박사가 여성연구원까지 끌어들이며 널리 유포시킨 가장 안 좋은 개념이 아닐까 싶은데, 공영방송 일일극이 다만 ‘극적’이라는 이유로 써먹었다.

엄마는 그저 ‘난자공여자’이며 여전히 중요한 것은 누구네 집의 ‘씨’냐는 점이다. 재벌가의 상속 싸움이라면 천문학적 돈이 오갈 테니 (드라마 소재로) 그럴듯할 수도 있다고 치자. 대다수 서민들이 ‘동일시’ 속에 시청하던 일일극에까지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인가? 광고 성적이 좋아 ‘완판’이라도 되면 과연 그 열매는 누구에게 돌아갈까?

<뻐꾸기 둥지>라는 제목부터가 생명을 수단화한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남의 노고와 헌신으로 제 새끼를 키운다는 뻐꾸기의 습성, 남의 자식을 밀어 떨어뜨려야만 내 자식이 사는 야만의 둥지가 ‘보편’이라는 뜻인가? 이게 ‘홈드라마’의 참뜻이 아니라면 이제 출생의 비밀은 제고 돼야 한다. 세상 누구에게도 거의 일어나지 않을 특이 사례라면 ‘세상에 이런 일이’의 취재 대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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