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를 드라마로 본다는 것은 반갑고도 마음 아픈 일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사실 굉장히 ‘보수적인’ 장르다. 평균치 혹은 보편적 감성에 대해 각별하게 관심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험적인 이야기를 다루기보다는, 누구나 다 아는 익숙한 것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종편이 지상파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해도, JTBC에서 드라마 <송곳>을 시작했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해고 노동자 이야기’이고 노동조합과 노동쟁의, 노동법 강의로 채워지는 작품이다. 물론 최규석 작가의 동명 웹툰 원작이 인기리에 연재 중이긴 하다. 그러나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다. ‘노동자’라는 단어를 그렇게도 쓰기 불편해하며, 5월1일 메이데이조차 ‘근로자의 날’이라는 오묘한 이름으로 지어 부르는 나라가 아닌가. 해고가 이토록 범상한 단어가 된 것인가. 저임금 비정규직은 이제 아주 흔해빠진 말이 됐다. 시청자들도 잘 안다. 그들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범한 시청자는 곧 ‘평범한’ 해고 노동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은 끝을 모르는 채, 사람을 최대한 짧게 싸게 부려먹을 방법만을 고안해내고 있다.
드라마 <송곳>은 ‘스타’가 아닌 ‘원작’을 충실히 옮기는 쪽을 택했다. 원작의 캐릭터에 부합하는 적임자들을 최대한 배치했고 배우들의 열연이 화제다. 대사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송곳 같다. 마음에 콕 들어와 박힐 뿐 아니라 무뎌지려는 감각을 후벼 판다. 왜 나를 해고하느냐는 항변에 관리직인 허과장은 말한다. “니가 제일 쉬울 거 같았어. 어차피 니네들 다 잘라야 돼. 니들 못 자르면, 나도 잘려.”
대형마트에서 벌어진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 이 뜨거운 현장의 이야기가 현재 입소문을 타고 시청률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수인(지현우 분)과 구고신(안내상 분)이 만나 푸르미마트에도 ‘노동조합’을 만들려 하니, 진짜 이야기는 앞으로 5회부터 펼쳐질 것이다. <송곳>은 시청하기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매일의 이야기다. 땀 흘려 먹고 살아야만 하는 세상의 약자들이 그 오랜 시간 서로를 지켜온 눈물겨운 결과가 ‘노동법’이라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된다. 극중 구고신은 말한다. “이런 건 유럽처럼 학교에서 가르쳐야지. 법 없을 때도 노조 했어. 그래도 지금은 노동법 공부한다고 잡아가진 않잖아. 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 다음 걸음은 시청자가 도울 차례다. 더 이상 ‘노동법 공부’를 미룰 수 없는 시점까지 온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