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썸’이 초미의 관심사인 요즘이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미래’가 점쳐지지 않는 시대상의 반영인가. 믿을 건 오직 (순간의) 감정뿐인가. 그렇다면 ‘썸’이란 과연 무엇인가. 설령 안다 해도 잡을 수는 있는 것인가.
예전엔 썸씽(something)이라고 하면 다소 부정적이고 은밀하면서도 구체적인 연애의 사건을 내포한 뉘앙스였다면, 요즘 유행하는 ‘썸’ 혹은 ‘썸 탄다’는 말은 다르다. 어떤 규정할 수 없는 알쏭달쏭하고 들쭉날쭉한 감정의 미묘한 외줄타기 같은 느낌이다. 정기고와 소유가 함께 부른 ‘썸’이 오랫동안 가요 순위 정상을 차지하면서, ‘썸’에 대한 현 단계 총정리를 해준 셈이 됐다.
썸을 고대하지만 막상 눈앞에 다가온 그것이 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는 이 종잡을 수 없는 심정을 제대로 포착해낸 가사 덕택이다. “요즘 따라 내 꺼인 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너/ 니 꺼인 듯 니 꺼 아닌 니 꺼 같은 나”, 이게 바로 ‘썸’이란다. 분명 ‘아무것도 아니’라고는 말 못하지만 그렇다고 뭔가가 있다고도 말할 수 없는, ‘연인인 듯 연인 아닌 연인 같은 너’ 때문에 애타는 상황이다.
JTBC의 <마녀사냥>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연애상담을 표방한 프로그램은 예나 지금이나 많다. 라디오 연애상담을 넘어 요즘엔 TV가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많은 사연을 정리하고 대신 살아주기라도 할 듯이 군다. 그럼에도 방송 초기 이 프로그램의 포맷은 독보적이었다. 기성 프로그램들이 놓친 ‘썸’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남녀가 사귀기 전 단계,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확신은 없는 단계, 이런 수많은 ‘썸’의 사연들이 매회 ‘그린 라이트’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달라고 보챈다. 본인에게는 정말 심각한 일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짚이는 건 없다. 말 그대로 애매모호한 ‘감’과 ‘촉’으로 알아맞춰야 한다. <마녀사냥>의 MC 네 남자의 기능은 이 야릇함을 판정해 주는 ‘애정남’의 역할이다. 자신이 겪었던 혹은 상상한 한도 내에서의 최대치의 구체성을 끌어내야 한다. 대단히 주관적인데다 심지어 이 네 남자 중 상당수는 ‘제 머리도 못 깎을’ 것 같은 상태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들의 조언은 한없이 진지하다. 뭔가 손에 잡히지도 않는데 감정의 줄타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시청자 ‘대신’ 결정해 주는, 어쩌면 세상에 유일한 멘토의 말씀인 것이다.
예전 같으면, 다쳐도 좋으니 직접 부딪쳐 보라는 조언밖엔 할 게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심각한 리스크 관리의 시대다. 짝짓기는 이제 경제학의 관점, 고도의 스펙의 영역이 되고 말았다. 투입한 에너지를 회수할 수 없다면 절대로 뛰어들기 두려운 인생 최고의 도박이 됐다. 한방에 모든 것을 날릴 각오도, ‘경험’으로 웃어넘길 여유도 지금 젊은이들에겐 없다. 다들 부족하고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 안에서 최대치의 썸을 끌어내야 한다. 사랑 참 어렵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