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만남’으로부터 비롯된다. 로맨스 드라마가 첫 만남의 순간에 유난히 공을 들이고 어떻게든 ‘운명적’ 주술성마저 부여하려 애쓰는 것도 지당하다. 그 만남이 일단 심상치 않아야 ‘다음’이 있다. 향후 스토리를 전개시키면서 이 관계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식으로 정당성을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에 대한 제작진의 특별한 고심의 흔적들이 사실 로맨스물의 역량이다. 이른바 불륜 드라마들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불륜’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기에 더 섬세하고 아름답게 첫 만남을 각인시키려 한다. 때로는 설명적이다 못해 호소력이 지나쳐 과잉인 경우가 많은 이유다.
KBS 수목극 <공항 가는 길>은 주요 인물들이 모두 결혼 중인데, 배우자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그야말로 ‘정통’ 불륜 드라마다. 그런데 대체로 언론의 평이 신기할 정도로 호의적이다. 배우들에 대한 호감인 것일까. 그러다 곧 깨달았다. 이 드라마에서 ‘부부 관계’ 설정은 매우 특이하다. 부부라고는 하는데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세상에서 가장 거리감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거의 체질적일 듯한 이질감이다. 그래서 ‘불륜’으로 안 보인다.
유부남들은 조금도 ‘결혼’이 몸에 배지 않았다. 여전히 멋지다거나 스타일이 미혼 느낌이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는 남자들 같다. 마치 남의 결혼을 바깥에서 구경하듯 ‘유부남’ ‘아빠’ 타이틀만 얻었다. 자신의 결혼이 액세서리 격이 됐다. 이것은 실패한 설정이 아니라, 철저하게 잘 고안된 이 드라마의 핵심요소다.
최수아(김하늘 분)를 사랑하는 서도우(이상윤 분)도, 최수아의 법적 남편인 박진석(신성록 분)도 마찬가지다. 사춘기 딸을 둔 최수아와 김혜원(장희진 분) 또한 그러하다. 결혼은 해본 적도 없으며 앞으로도 할 일 없을 듯한 청춘스타 이미지의 캐릭터들이다. 살림 냄새가 절대 안 나야 하는 것도 필수다.
하지만 묻고 싶다. 결혼한 부부처럼 살아봤어야, 이후의 변화에 ‘불륜’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게 아닐까? 주인공들의 한없는 우유부단과 방황 또한, 한 번도 명실상부한 부부로 산 적이 없기 때문 아닐까. 물론 이 드라마만의 문제는 아니다. 남편과 아내라는 ‘거죽’으로 인해 오히려 다른 이성을 못 만난 순수한 사람들로 그려진다. 그러다 어느 날,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는 식이다. 이런 설정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제대로 결혼을 했어야, 이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그 이전의 관계 또한 진실했어야 한다. 상대를 바꾼다고 과연 행복이 저절로 올까. 아름다운 장면들이 갈수록 헛헛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