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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2016)

- 우리가 꿈꾸게 내버려 두세요

그와 그녀가 있었다. 사랑이 있었다. 그 사이에 시(詩)가 흘렀다. 시와 그들의 관계는 마치 물과 같아서 부드럽고 연하게 서로 스며들어 있었다. 하늘과 바람처럼. 눈과 비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표 나지 않게 그러나 반드시 있어야 할 곳에 정확한 때에 머무르는 채로. 패터슨과 로라 부부처럼 어쩌면 세상만물은 다 상호보완적이다. 몽상가와 시인, 영감과 행위, 춤과 노래, 일과 휴식, 잠과 꿈. 그는 성냥 같은 아주 사소한 물건으로부터도 시를 길어올린다. 시골마을 ‘패터슨’의 버스 운전기사인 패터슨은, 오래된 애마 같은 낡은 버스를 몰며 어쩌면 인류가 태곳적부터 해왔을 중요한 일인 시 쓰기를 이어간다.

로라에게 시를 보여준 적은 없다. 패터슨의 시 노트는 필사본조차 없는 꾹꾹 눌러 쓴 유일본이다. 다만 둘은 날마다 시 이야기를 한다. 그녀가 없다면 마치 시를 쓰는 이유도 없다는 듯이. 그는 시를 ‘쓰지’만 그녀는 시 자체다. 그냥 사는 게 시적이다. 굳이 햇볕도 안 드는 지하실에 틀어박혀 종이와 씨름하지도 않는다. 로라는 커튼이든 머핀이든 아무 ‘도화지’에나 떠오르는 무늬를 그날그날 그린다. 몹시 즉흥적인 것 같지만, 일련의 질서가 있고 흐름도 있다. 그녀는 (굳이 분류하기도 미안한) 예술가다. 유희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지어내고 만들고 즐긴다. 얼핏 일상인 듯도 하지만, 실은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특한 생활이다. 신기하다 못해 신화적인 느낌도 난다.

로라에겐 자연스럽지만, 사실 쉽지 않은 생활이다. 노는 게 곧 삶이고 예술이다. 자는 게 곧 구상이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창작물들을 세상에 내놓는다. 로라는 ‘돈벌이’가 아니라 ‘창작’을 산다. 모두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들이 날마다 태어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지지해주며 함께 행복해하는 남편 패터슨이 빛나는 지점이다.

하늘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실감 못하다가, 어느 순간 비라도 내리면 저절로 손을 뻗어 손바닥으로 빗방울을 받으며 온몸으로 느끼는 본능적 자세를 취한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우리가 유전으로 물려받은 몸짓이 말해준다. 짐 자무쉬가 ‘영상으로 쓴 시’라는 이 영화는 그런 순간을 흠뻑 느끼게 해준다. 시를 쓰든 아니든 순간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안다면 우린 다 시 속을 사는 셈이다. 손가락 끝으로 잡아채서 굳이 종이에 적어두어야만 시가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시란 어쩌면 고이고 흐르다 빗방울처럼 느닷없이 만나지는 삶의 작고 소중한 선물이 아닐까. 그저 기쁘게 맞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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