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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 ‘구르미 그린 달빛’ 사랑이라는 무모함

- 그럼에도, 너는 나의 숨

이제 우리는 사랑이 무엇이기를 바라는 것일까. 대중문화가 사랑을 그려내는 일련의 흐름을 짚어보면, 당대의 간절함이 짐작되기도 한다. 멀리는 ‘시경(詩經)’에서도 3천년을 이어온 인간의 마음을 볼 수 있다. 고려가요가 전하는 곡진함도 여전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할 때의 마음은 같은 것일까.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은 동명의 웹소설을 바탕으로 한 궁중 로맨스다. 주연배우 박보검의 눈빛 연기가 화제다. 거의 ‘사랑’ 그 하나만을 남기고, 다른 나머지 모든 것을 ‘구름’ 뒤로 감춰버린 채 소꿉놀이 하듯 빠져서 보라는 주문을 시청자에게 걸고 있다. 남장을 하고 궁에 들어가 내시가 된 홍라온 역할의 김유정은, 역대 유사 드라마 중 가장 남장이 안 어울린다. 전혀 남성스럽지 않다. 대놓고 여자아이다. 여자도 아닌 여자아이 말이다.

제작진은 일부러 이런 캐릭터에 이런 배우를 고른 듯하다. 세자는 홍라온을 처음 본 순간부터 조금도 헷갈릴 필요가 없었다. 동성애 취향인지를 고민하는 에피소드 따위는 사족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여자였고, 세자는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면서도 여유로웠다. 게다가 이 ‘내시’는 실제적인 ‘남여상열지사’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소녀인데다, 세자는 다만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다. 실상 세자의 눈빛은 홍라온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시청자를 위한 것이다. 더 정확히는 ‘사랑’이 현실적으로 (당장은) 가능하지 않을 시청자를 위한 것이다. 20대보다 40대 주부들의 반응이 훨씬 더 뜨겁다는 ‘박보검 앓이’의 정체다.

TV를 보는 동안만은 모든 것을 잊고 그 눈빛에 빠지게 되는 마력이 여기서 발생한다. 둘이 서 있는 그림 자체가 예쁘다. 물론 극 전개를 위한 숱한 위기와 암투의 순간이 덮쳐온다. 그러나 시청자 눈에는 둘의 모습이 거의 전부나 다름없다. 이 세상에 오로지 둘만 있는 것 같은 장면에서 그들의 연기력은 빛을 발한다. 개연성을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이제 사랑은 어쩌면 종교보다 더 간절하게 소망스러운 무엇이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대중문화 속에서, 사랑은 공기보다 더 절박한 마지막 숨구멍이다. 사랑이 여의치 않은 시대의 반영이다. 흔히 ‘기적’에 비견되곤 하던 사랑은, 가수 박효신의 신곡 제목처럼 ‘숨’이 되고 말았다. 적어도 유행가 가사에서는, 하루를 살게 하는 마지막 위안이다. “바랄 수 없는” 꿈처럼 보일 때 사랑은 더욱 그러하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줄거리와, 더 이상 애절할 수 없는 노래들로 채워진 궁중 로맨스. 세자만이 연인에게 보일 수 있는 무모함이, 남성 시청자들의 무관심과 여성 시청자들의 열광을 동시에 낳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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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지금, 굳이 ‘삼국지’를 읽는 이유 영화, 책, 예술작품 가운데 하나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괜히 실제 내 삶보다 더 있어 보이는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읽어본 적 없지만 의미 있어 보이는 철학책을 고를지, 그럴듯한 예술영화를 추천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오래전 읽었던 ‘해변의 카프카‘를 떠올렸다.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라 추천하기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에 고른 책은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다. 삼국지는 워낙 유명해서 오히려 추천하기 조심스러워지는 책이기도 하다. ‘굳이 지금 삼국지?’ 라는 반응도 있을 테고, 이미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알고 있던 이야기와는 느낌이 꽤 다르다.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선택, 타이밍과 판단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읽다 보면 어떤 날은 조조가 가장 쿨해 보이고, 어떤 날은 유비의 끝까지 사람을 믿는 태도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삼국지는 책 ‘읽는 재미’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고전이라고 하면 시작하기 전에 부담부터 느끼기 쉬운데, 삼국지는 일단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