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그래라는 이름의 젊은이가 있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未生)>의 주인공인 그는 참 서툰 ‘인턴’이었다. 모두가 그에게 호통치고 혼내는데, 정작 독자들은 안쓰러워 눈물이 핑 돌곤 했다. 꼭 나 같은 장그래가 설 자리를 내달라고 안간힘 쓰고 있었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인 걸로 생각하겠다”던 독백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알고 보면 ‘원 인터내셔널’의 사람들 모두 속으로는 혼자 우는 ‘미생’들이었다. 그 이야기가 tvN 금토 드라마로 방영 중이다. 예상은 했지만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케이블 드라마임에도 초대박 조짐이 보인다. 1.6%로 시작한 시청률이 4회만에 3.49%(케이블 기준, 닐슨코리아)까지 치솟았으며 최고시청률은 4.9%였다. 물론 시청률이 전부는 아니지만, 지상파 드라마들이 ‘그저 틀어놓는’ 성적을 기록 중일 때 미생은 ‘집에 가게 하는’ 드라마로 자리매김 중이다.
<미생>은 방영 4회만에 아니 첫날부터 우리가 기다려왔던 드라마임을 입증했다. 웹툰이 책으로 발간되었을 때의 인기와는 또 다르다. 내용을 모르지 않음에도 기다렸다 챙겨본다. ‘평면’이던 등장인물들은 배우들의 열연과 함께 살과 피가 있는 존재가 되어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모든 배우들과 모든 장면의 연기 조화가 잘 조율돼 있다. 특히 장그래를 맡은 임시완과 만년과장 오상식을 연기하는 이성민은 ‘3초’만에 시청자의 눈과 마음을 가져가곤 한다. 원작 속의 ‘눈 빨간’ 오과장은 배우 이성민을 만나 실체가 되었다. 사소한 에피소드 하나에 아니 대사 한 마디에 통째로 마음이 무너지고 다시 일으켜진다. 그와 그녀가 눈빛만 주고받았는데도 숨이 잠깐 크게 쉬어지고, 정글 같고 전쟁터 같은 (세트장)사무실 공기가 오늘 내가 겪은 설움을 몰고 와 울컥하기도 한다. ‘아빠’ 한 마디에 그 많던 울분을 내려놓고 아이의 볼을 부비는 퇴근길도 있다. 말하자면, 드라마 시청의 참맛이 살아 있는 작품이다.
제목은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라지만, 배우들은 펄펄 살아서 지금 우리 마음을 대변해 준다. 지나왔거나 혹은 너무 아파 덮어두었거나, 버티기 위해 아직도 고군분투 중인 나의 하루들과 왜 그리 닮았는지. 겨우겨우 살아가지만 목울대에는 늘 뜨거운 게 걸려 있는 동시대 봉급생활자들, ‘정직원’ 대열에 어떻게든 끼기 위해 ‘버려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들이 너무 생생하다.
오래 바둑기사를 꿈꾸었으며 생의 아주 많은 날들을 꿈을 위해 바쳤던, 사실은 바둑 외에는 아는 게 없었던 ‘장그래’들이 세상엔 얼마나 많을까. ‘꿈’에 시커멓게 데인 채로 꿈을 접었다고 해도 ‘밥벌이’는 여전히 만만치 않아 울고 싶은 장그래들이 오늘도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을까. 그 마음 안다. 알기에 응원하고 알기에 설렌다. 어떤 기존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나왔을 때의 착 감기는 느낌, 그것이 <미생>이 있는 주말을 기다리게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