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뭇한 일이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누적관객수 300만 명을 돌파했다. 흥행보다 더욱 값진 것은 쏟아지는 호평이다. ‘일본군 위안부 소재를 상업영화로 영리하게’ 잘 빚어냈다. 어떻게 이런 민감한 역사적 상처를 (은근슬쩍) 자연스레 웃음과 공감으로 녹여내면서도 핵심 이야기는 또렷이 그려냈을까. 가장 큰 성취는 일상성으로의 전환이다. 일단 유쾌하고 따뜻하다. 평범한 이웃들의 소소한 일상사로부터 사연을 풀어간, 딱 36.5도의 영화다.
주인공 나옥분(나문희 분)은 시장통에서 옷 수선집을 꾸리며, 구청에 민원만 무려 8000건을 올린 민원왕이다. 잔소리꾼으로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도 별명이 ‘도깨비 할매’다. 구청에 새로 온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 분)는 이 ‘블랙리스트 1호’ 할머니의 폭풍 민원을 칼같이 자른 원칙주의자다. 그런데 민재가 영어능통자임을 안 옥분이, 악착같이 과외 선생을 부탁하면서 일은 꼬이고 관계는 얽힌다. 필사적으로 배우려는 할매와 거절하는 민재의 사연이 마치 로맨틱코미디 장르처럼 엎치락뒤치락하며, 두 남녀(?)는 티격태격하다 정든다. 민재는 나중에 옥분이 가슴 깊이 감춰둔 그 아픈 상처와 비밀을 알게 된다. 옥분이 평생 듣고 싶던 그 말, 일본으로부터 꼭 들어야 할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위한 ‘집중과외’의 치열한 연대 과정은 객석을 눈물로 적시며 통쾌함마저 안겨준다.
모든 배우들이 감칠맛 나게 적역을 해내고 웃음을 주는 동시에 심금을 울린다. 특히 이런 소재의 영화들이 현실성을 이유로 피해를 당하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관행과는 확실히 다른 길을 갔다. 그렇다고 13세에 끌려간 어린 옥분과 어린 정심 등 소녀들의 깨어진 고운 꿈과 아픔을 소홀히 다루지도 않았다. 다만 현재를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열정과,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겠다는 용기에 더 주목했다.
김현석 감독은 2014년 CJ문화재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기획안 공모전 당선작인 시나리오를 받아 자신만의 스타일로 각색, 영화를 완성시켰다. 2007년 미 의회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 공개 청문회에서 일제의 만행을 증언한 ‘옥분’의 실제 인물 이용수 할머니는 기획 단계에서 시나리오 자문을 맡기도 했다. 우리의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작업의 좋은 사례다. 거창한 명분 없이도 웃고 우는 와중에 가슴 뜨거운 결의를 다질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 고맙다는 관람 소감도 이어진다. 무엇보다 우리 할머니들의 당당하고 용감한 역사를 새삼 깨닫게 해줘 고맙고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