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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

<추노>, 좋은 꿈을 꾼 대가


사랑은 어떻게 지키는 것인가?

야생 호랑이처럼 길들여짐을 거부했던 드라마 <추노>가 그 치열한 여정을 끝냈다. 길에서 만나고 길에서 사랑하다 결국 길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 <추노>는 길거리 사극이었다. 밥도 잠도 저잣거리의 주막에서 해결했다. 주막에서 때우는 밥이 달걀 파묻은 특별식이 되려면 하다못해 작은 주모의 마음이라도 얻어야 했다. 집이 있고 밥이 절로 해결되는 이들은 양반뿐이었다. 양반의 밥은 노비들의 시린 손발과 매운 눈물 없이 마련되지 않았고, 이를 당연히 여긴 대가는 분노한 총구의 과녁이 되는 것이었다. 대길(장혁) 또한 ‘의형제’ 최장군과 왕손이에게 집을 마련해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도망노비들의 삶을 박살냈는지 모른다. 시청자는 누구보다 대길의 생존을 바랐겠지만, 손에 피를 묻혀가며 ‘집’을 마련한 대길은 살아남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추노>는 야생 호랑이들의 격전지였다. 강하고 외롭고 쓸쓸한 호랑이 같은 사내들은 결국 베고 더 벨 게 없을 때까지 칼부림을 멈추지 못한다. 쫓는 자도 쫓기는 자도 멈추지 못할 수레바퀴다. 그 길의 끝에는 고독한 실존이나 죽음이 있을 뿐이다. 살인귀가 된 황철웅(이종혁)은 안델센 동화 ‘분홍신’의 주인공 같다. 자신의 칼이 결국 자신을 베는 것이 그의 운명이다. 악귀 그분(박기웅)은 형님이라 부르던 노비들에게 “냄새 난다”고 말하는 순간, 인간성을 버리고 마성(魔性)에 굴복한다. 아무에게도 마음을 붙들리지 않은 이들은 그렇게 마성의 노예가 되어갔다.

언년이었던 혜원(이다해)은 그 아름다운 모습 자체로 구원이었다. 그토록 고결한 아름다움은 사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하지만, 그럼에도 보는 이들에게는 생의 의미가 되었다. “네가 추운 게 아픈 게 힘든 게 싫어서” 너와 같은 사람이 되려고 다 버린 대길은 사랑을 잃고 한 마리 들개처럼 살았다. 언년이에 대한 집착이 더 큰 사랑으로 승화된 이후 대길은 호랑이의 본성을 지켰다. <추노>는 비장했다. 사랑 때문에 자신을 버릴 수는 있지만, 사랑의 힘만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토록 잘 살아주기를 염원한 이의 행복마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너없이(without you) 살 수 없었던 사람 하나 남기고 가는 것뿐이다.

은혜는 잊어도 원수는 잊지 말라는 천지호(성동일)의 당부는 결국 아무것도 잊지 말라는 말이다. 잊지 않는 것 외에 우리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으랴. 사랑했던 기억도 내가 살다간 사실도 그것을 기억해주는 이가 모두 사라지면 소멸한다.

나 대신 살아달라는 소망은 <추노> 이후 핏줄을 넘어섰다. 그 호랑이들이 제 목숨보다 더 사랑했고 주검이나마 묻어주기 위해 죽음을 각오했던 이들은 모두 생면부지였다가 살붙이가 된 남이었다. 수원 이재준 대감이 한섬에게 그랬듯 ‘좋은 꿈을 함께 꾸는’ 순간 너는 내가 된다. 희망이 죽음을 넘어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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