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로맨스 드라마는 성공하기 힘들까? 대중은 늘 새로운 로맨스물을 기다리지만, 이 장르야말로 잘 만들기가 몹시 어렵다. 성공은 거의 보장 못한다. 우선 두 가지 양립 불가능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로맨스 드라마는 현실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되 절대 현실의 냄새를 피워서는 안 된다. 개연성은 있어도 현실의 그림자는 못 느껴야 한다. 천사 같은 선남선녀 주인공은 필수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온갖 아름다운 명분과 헌신도 등장해야 한다. 오직 그 드라마 속에만 있는 판타지 세상은 최대한 그럴싸해야 한다. 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둘째, 그럼에도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디테일이 주는 정보들을 잊고 드라마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조건을 충족시키는 게 실상 로맨스물의 ‘기본’이다. 이 토대 위에 그 다음부터 무언가를 차곡차곡 얹어야 비로소 독특한 매력이 생겨난다.
인기 절정의 KBS 수목극 <태양의 후예>는 대체 어떻게 이 바늘구멍을 통과해 시청률의 신기원을 연 것일까. 요즘 같은 다매체 다채널 환경에서는 의아스러울 지경의 인기다.
이 작품의 관건은 사실 외부를 제대로 치밀하게 구성하는 데 있었다.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극단적인 위험과 그 속에서 꽃피는 사랑 이야기를 해외 현지 촬영의 힘으로 안착시켰다. 따라서 <태양의 후예>가 주는 설렘이 유지되려면 극중 유시진(송중기 분)과 서대영(진구 분)을 필두로 주요 인물들이 몸담은 군부대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어야 한다. 적어도 방영시간만이라도 그런 느낌을 주어야 한다. 그들의 충성을 받는 국가는 ‘선의 집결체’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들은 ‘혼자’ 싸우는 게 아니다. 국가의 명령을 받고 국가의 이름으로 공무를 집행한다. 아무리 비밀 단독임무일지라도. 대신 드라마가 조금이라도 느슨해지고 로맨스가 질척거리면, 시청자에겐 속속 의문이 파고든다. 국가는 과연 선한가? 유시진의 신념 체계는 타인에게도 유효한가? 그 모든 거창한 대의명분은 주인공들의 잘생긴 얼굴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그래서 다 보고 나면 때로 허탈해진다. 구호 같은 명분과 PPL만 남는 허황함 뒤의 후유증이다. 현실과 꿈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는 의외로 쉽게 깨진다. 사랑에 대한 대중의 소망을 애국심 등의 지나친 구체성으로 얽으려는 교조적 태도도 낭만을 깬다. 오랜만에 연속극에서 느끼는 설렘인데, 이 또한 현실세계 강자들의 ‘계산’에 자리를 내주려니 입맛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