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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영화] 버닝

 

몇 년 전, 필자가 우리 대학에서 진행하던 공통교양 교과 시간에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관람하고 감상문을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준 적이 있었다. 감독 자신이 피력했던 바와 같이 ‘<버닝>’은 질문하는 영화고 해답은 관객들 스스로 찾고 완성’해야 한다. 그래서 선생의 해설 이전에 학생들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이 작품이야말로 안목을 갖춘 관객을 절대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 작품의 감독이 경고하고 있는 메시지를, 상당수 학생이 자기 삶의 금과옥조로 받아들일 듯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요지는 극중 여주인공 ‘해미’가 말한 바와 같이 자신(들)도 비루한 현실 속에서 일차적 욕구에만 목을 매는 ‘리틀 헝거’가 아니라, ‘그레이트 헝거’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극의 초반부에 해미가 ‘종수’에게 보여주는 ‘마임(mime)’과 그에 대한 설명은 그녀의 캐릭터를 규정하는 핵심 단서다. 그녀는 자신의 현실을 정면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공허한 이상을 추구한다. 마임이란 한마디로 공허한 몸짓이고 현실도피의 방편이며 그에 대한 부연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녀는 삶이 너무나 비루하고 개선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에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나 이상을 먼 곳, 현실이 아닌 곳에서 찾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조차도 말뿐이다. 그 말에 속으면 안 된다. 해미를 가장 잘 아는 엄마와 언니가 그녀에 대해 말하는 것을 주목해 보라.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는가. 종수는 해미에게 들은 고향 마을의 우물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은 해미 엄마와 언니는 고향 마을에 우물은 없었다고 단언한다.

 

그러니까 해미가 말하는 ‘리틀 헝거’니 ‘그레이트 헝거’니 하는 말은 공허한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이 영화를 보면서 그레이트 헝거가 되고 싶다는 해미의 말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지지하는 입장을 갖게 된다면 다시 한번 더 보라. 이러한 표면적 메시지에 속절없이 휘둘리고 함몰되는 젊은이들이라면, 우리 사회의 ‘벤’과 같은 존재들에게는 정말 손쉬운 먹잇감, 비닐하우스 취급받게 될 수도 있다.

 

해미와 종수가 나고 자란 동네는 휴전선이 지근거리에 있는 접경지대다. 소란스러움과 긴장 상태가 일상화된 곳이고, 자본주의 세상에서 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기피할 수밖에 없는 동네다.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셋방과 비교될 만한 장소다. 반면 벤이 살고 있는 동네는 강남의 대표적 부촌이다. <기생충>의 박사장네 집에 비견된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벤의 부와 가난을 대물림한 종수와 해미. 한 하늘을 이고 살고 있지만, 이들의 세계는 너무나 다르고 멀다. <기생충>의 ‘기우’와 <버닝>의 해미는 이란성 쌍둥이 같다. 결국 두 작품은 동일한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세상의 본질을, 이창동은 진지하고 무겁게 그린 반면, 봉준호는 장르를 넘나들며 재기발랄하게 그려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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