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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영화] <위플래쉬>에서 만나는 마키아벨리즘

"인간에 대한 학대와 폭력이 가진 위험성 경고해"

 

영화 <위플래쉬(Whiplash)>(2014, 데미안 셔젤(Damien Chazelle) 각본·감독)는 다층적 문제작이다. 혹자는 이 영화를 ‘버디 리치’를 롤모델로 세계 최고의 재즈 드러머를 꿈꿔 온 소년이 ‘셰이퍼음악학교’에 들어가 스승의 편달(鞭撻)을 받으며 자신을 넘어서는 인간승리의 드라마로, 혹은 한 편의 멋진 음악영화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애정결핍의 소년이 생물학적 아버지와 상징적 아버지 사이에서 인정투쟁을 펼치는 성장드라마로 볼 수도 있겠다. 한편, 소시오패스 성향의 폭력적인 선생과 성취에 미친 듯 목마른 학생 사이의 불꽃 튀는 대결을 그린 한 편의 사이코드라마나 스릴러물로 읽을 여지도 충분하다.

 

‘앤드류 네이먼(마일스 텔러 분)’은 ‘버디 리치’를 롤모델로 세계 최고의 재즈 드러머를 꿈꿔 온 소년이다. 그는 편부 슬하에서 자랐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는 실패한 작가며 현재는 고등학교 교사로 음악적 배경은 없다. 그는 최신 개봉영화가 아니라 옛날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이다. 그것은 고루하거나 편협함을 넘어 퇴행(退行)의 기표다. 그는 앤드류가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주기를 바라며, 아들의 꿈을 인정해주거나 가치 있게 평가해주지 않는다. 계속해서 다른 진로, 인생의 다른 옵션을 선택하라며 기운 빠지는 말만 거듭한다. 앤드류는 소심하고 존재감 없는 청년으로 아버지의 애정결핍에 허덕이며 인정투쟁 중이다. 그는 사람들(아버지, 스승, 연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내적 열망을 가지고 있다.

 

‘테렌스 플래쳐 교수’는 교단의 소시오패스며 비상한 사냥꾼이다. 영화는 시점 쇼트로 시작해 시점 쇼트로 끝나는 수미상관 구조다. 시점의 주체는 바로 플래쳐다. 일찍이 미셸 푸코는 “시선의 위계가 곧 권력(감시와 처벌)”임을 설파한 바 있다. 첫 장면부터 앤드류를 쥐락펴락 가지고 노는 플래쳐의 모습은 새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전형이다. 앤드류는 플래쳐의 먹잇감(반려동물)이 되기 쉬운 학생이었다. 그는 ‘셰이퍼음악학교’라는, 이른바 금수저들의 리그에 들어온 흙수저다(자살한 제자 ‘숀 케이시’ 역시 그렇다). 플래쳐는 앤드류의 가정환경과 배경에 대해 묻는다. 앤드류의 부모가 유력인사거나 음악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면 플래쳐는 쉽사리 그를 자신의 반려동물로 삼지 못했을 것이다.

 

플래쳐에게 심리·정서적 학대와 폭력을 당하는 가운데 앤드류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에게 항거하지 못하고 자책하며 그를 만족시키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종속성은 강화된다. 그로부터의 분리나 고립은 가장 큰 두려움이다. 앤드류에게 전이된 플래쳐의 폭력성과 광기는 그가 마침내 자신을 넘어서 고도의 예술적 성취에 이르도록 이끈 원동력이 되기는 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앤드류의 미래는 숀 케이시이거나 또 다른 플래쳐가 아닐까. 그러니까 이 작품은 한 인간에게 가해지는 신체적·정서적·언어적 학대와 폭력이 가진 위험성에 대한 엄혹한 경고다.

 

일찍이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왕이 통치할 때 맞닥뜨릴 수 있는 네 가지 경우의 수를 이야기한 바 있다. 첫째, 과정을 조화롭게 이끌며 결과도 아름답게 매듭짓는 최상의 경우. 둘째, 과정이 거칠고 투박하며 결과도 참담한 최악의 경우. 셋째, 과정은 유려하였으나 결과는 기대 이하의 경우. 넷째, 과정에는 무리수가 따랐을지라도 결과는 풍성하게 마무리되는 경우. 이론상으로는 첫 번째가 가장 좋겠으나 현실적으로 내릴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은 네 번째의 경우임을 강조하고 군왕에게 권한다. 한 마디로 군주는 백성들에게 폭정을 휘두르고 공포를 조성해서라도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내면 모든 무리한 과정은 다 용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결과지상주의 마키아벨리즘의 요체다. 플래쳐가 체현하는 광기 어린 편달(위플래쉬)이 오늘에도 유용한 방식인지 다시 생각하고 확증해 볼 문제다.





[교수님 추천해주세요] 지금, 굳이 ‘삼국지’를 읽는 이유 영화, 책, 예술작품 가운데 하나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괜히 실제 내 삶보다 더 있어 보이는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읽어본 적 없지만 의미 있어 보이는 철학책을 고를지, 그럴듯한 예술영화를 추천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오래전 읽었던 ‘해변의 카프카‘를 떠올렸다.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라 추천하기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에 고른 책은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다. 삼국지는 워낙 유명해서 오히려 추천하기 조심스러워지는 책이기도 하다. ‘굳이 지금 삼국지?’ 라는 반응도 있을 테고, 이미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알고 있던 이야기와는 느낌이 꽤 다르다.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선택, 타이밍과 판단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읽다 보면 어떤 날은 조조가 가장 쿨해 보이고, 어떤 날은 유비의 끝까지 사람을 믿는 태도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삼국지는 책 ‘읽는 재미’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고전이라고 하면 시작하기 전에 부담부터 느끼기 쉬운데, 삼국지는 일단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