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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영화]트루먼 쇼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 분)’는 ‘씨 헤이븐(Sea Haven)’이라고 하는 작은 항구도시에서 30년째 살아오고 있다. 어려서부터 모험심이 강했던 그의 장래 희망은 마젤란 같은 탐험가였다. 그러나 부모와 학교 선생님은 그의 의지를 꺾고 순치시키는 방향으로 통제와 교육을 이어 왔다. 선생님은 세계지도를 펼치며 이제 지구상에서 새로 발견할 땅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한 소년의 욕구를 잠재울 방법은 없었다. 소년은 아빠와 함께 요트를 타고 바다에 나갔고, 폭풍우 속에서 표류하다 아빠를 잃게 된다. 이로 인해 트루먼은 물(바다)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트라우마)을 갖고 살게 된다. 그가 씨 헤이븐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온 이유도 그곳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으며 외부로 나가는 유일한 다리를 건너는 것조차 너무나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에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보험회사에 취직해 사회생활을 하며 대학 축제에서 만난 메릴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그의 실상은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 분)’라고 하는 TV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 책임프로듀서가 30년째 연출하고 있는 <생방송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다. 한 인간의 삶 전체를 리얼리티 쇼라는 이름의 엔터테인먼트로 가공해 24시간, 365일 생방송하는 것이다. 이 TV 프로그램은 지구상의 백여 개 나라, 수억 명의 시청자가 즐기고 있다. 그러한 사실을 정작 트루먼만 모른 채 30년을 살아오고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양부모에게 입양돼, 그들을 친부모로 알고 살아왔다. 그뿐인가. 씨 헤이븐의 시민들, 이웃들, 친구, 직장 동료, 심지어 아내 메릴까지도... 모두가 트루먼 한 사람을 속이기 위한 연기자들이다. 그 때문에 아무런 의심의 여지 없이, 그는 자신이 본(지각한) 것들 모두 사실(실재)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아빠의 실종(사망) 역시 외부 세계에 대한 모험심과 지적 욕구를 거세하기 위해 채택한 극약처방이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가 생환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트루먼은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벗어던지고 다시 바다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세상의 끝(스튜디오의 끝)이 어디인지 확인하게 된다. 그제야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는 비로소 미지의 바깥세상으로 첫발을 뗄 수 있게 된다. 참으로 기가 막힌 알레고리가 담긴 이야기다.

 우리 젊은이 중에서도 본의 아니게 이와 같은 세월을 통과해 온 사례가 적지 않다고 본다. 유아기부터 부모가 설계하고 이끄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온 젊은이들 말이다. 유치원 시절엔 태권도장으로, 피아노나 미술학원으로,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선행학습이 중요하다며 여러 교습소, 학원을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된다. 그렇게 우리의 젊은이들은 최소 12년을 부모님이나 학교, 학원 선생님들이 프로그래밍하고 요구하는 것들을 수행한 끝에 대학에 온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트루먼이라고 하는 인물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2500년 전, 플라톤이 <국가론> 제7권, ‘동굴의 비유’에서 밝힌 알레고리도 떠오른다. 한 인간을, 태어날 때부터 사지를 묶고, 시선을 오직 앞(동굴 벽면)만 볼 수 있도록 고정한 채로 살아가도록 한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까지 각자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고, 오직 공부만, 오직 대학만 가라고 한 부모님, 선생님들의 세트장(동굴)에서 이제는 탈출해야만 한다. 바깥 세계는 그대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다. 캄캄하고 두렵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4년이라는 유보 받은 시간이 있다. 이 시간 동안 자신의 현 위치, 현존재를 철저히 자각해야만 한다. 백지와도 같은 캔버스(타블라 라사)에 자신만의 삶을 기획하고 설계해 도면을 그려나가야 하고, 하나씩 실천해 나가야만 한다. 한 번뿐인 삶에서 각자가 추구하고 싶은 삶의 가치나 이상은 무엇이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오래 해도 질리지 않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 나 다운 삶의 방편을 어디에서 무엇에서 찾을 것인지, 스스로 묻고 찾아가고 추구해 나가야만 하는 시간이 바로 대학 생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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