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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깔=꿀색

경계에 선 해외입양아의 정체성 찾기

 동양의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유럽으로 입양되어 온 소년, 영화는 한국의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아리랑’을 노래하는 풍경과 식당에서 남들보다 늦게까지 밥 먹는 소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따뜻한 양부모와 친절한 형제들의 배려 속에 자라지만 그는 주위의 기대에 엇나가며 내성적이고 말썽 많은 아이로 성장한다. 1950년 후반 부모에게 버림받고 거리를 헤매다 경찰의 손에 이끌려 고아원에 보내지고 벨기에의 한 부모에게 입양돼 살아가게 된 소년 융 에낭의 고향은 한국이며, 한국 이름은 전정식.

 융의 뒤를 이어 또다시 한국에서 여동생이 입양돼 오지만 그는 냉랭하기만 하다. 아니 그녀에게 더 냉랭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다른 한국인 입양아를 피해 다른 길로 돌아가고, ‘동양꼬마’라고 부르며 나직하게 벌어지는 친척들의 차별, 말썽을 피운 소년을 ‘썩은 사과’라고 부르며 꾸중하는 어머니 밑에서 그는 더욱 삐뚤어져간다.

 주위의 다른 입양아들이 공통되게 겪는 소외감과 정체성 혼란으로 소년은 괴로워한다. 스스로 한국을 부정하며 일본문화에 심취하며 ‘한국인이 싫으니 일본인이 되겠다’며 고집부리고, 맨밥에 핫소스를 과다하게 뿌려먹으며 자신을 괴롭히는 청소년기를 거친다.

 그런 그의 유일한 도피처는 그림, 만화였다. 친엄마에 대한 상상, 자신이 꿈꾸는 세계로의 자유로운 도피가 그림을 통해 이뤄지고, 그 그림을 통해 한국인 입양아 친구, 한국인유학생가정과 소통하게 된다.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 홈비디오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결합해 만든 독특한 영화이다. 벨기에에 도착하는 모습과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과 부모님이 찍어 놓은 홈비디오를 함께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전하는 사실감을 더해준다. 아니 어쩌면 이를 통해 양부모님과 형제들의 따뜻한 환대를 보여주며 어릴 적 그의 반항기 가득했던 악동 짓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고 할까?

 유럽으로 입양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약물을 복용하거나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어떤 이들은 자살에 이르기도 했다. 융도 이런 과정을 거쳐 성장했고, 그의 여동생도 그렇게 세상과 자신을 이별시켰다.

 벨기에인 융 에낭, 한국인 전정식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을 손수 만들어 고향인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부천 국제 학생 애니메이션 페스티발(PISAF)의 개막작으로 우리에게 소개됐던 이 작품은 제23회 자그레브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대상, 제36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80개의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23개의 상을 수상했다.

 동양인도 아니며 서양인도 아닌 경계에 선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고 고향을 찾아, 자신의 뿌리를 찾아 담아낸 다큐멘터리의 낯선 서울 풍경은 여전히 그가 경계인임을 보여주듯 서운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더 이상 그는 경계인도 아니며 우리도 유럽인들도 그를 경계인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피부색깔 =꿀색’은 그저 그의 입양서류에 표기됐던 그의 신체적 특징의 하나일 뿐 그에게 더 이상 굴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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