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령화가족>의 특징을 하나만 꼽으면 등장인물이 모두 찌질하다는 것이다. 찌질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가난해보인다, 없어 보인다’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만 이 가족이 찌질하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아니다. 가족 구성원들 각자가 그렇게 느낀다. 그래서 영화의 메인 카피가 ‘너 때문에 부끄러워 살 수가 없다’이다. 그래도 이 찌질한 가족이 각박한 현대사회에 얼마나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가를 눈치채는 순간 영화는 잔잔한 감동으로 훅 다가온다.
영화는 어머니(윤여정)에게 얹혀살기 위해 나이든 자식들이 하나둘 돌아오면서 북새통이 된 집안을 그리고 있다. 돌아온 순서대로 열거하자면 모태 백수 첫째 아들(윤제문), 영화 실패 후 폐인이 되어 돌아온 둘째 아들(박해일), 그리고 2번째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셋째 딸(공효진)과 그녀의 딸(진지희). 이 가족의 평균연령 39세, 남에게 그럴듯하게 자랑할 만한 꺼리도 없고 오히려 서로 민폐만 안 끼치면 다행이다.
이 영화에서 특히 더 찌질한 쪽은 남자들이다. 남자들은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아버지는 없다. 가장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남자형제들은 나이 드신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한다. 심지어 여중생 조카의 약점을 잡아 용돈을 삥 뜯는다. 힘을 강조하고 이름을 내세우며 권위주의에 빠진 장남,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공부시킨 차남이 제구실을 못한다. 영화는 전통적인 부계사회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신 은근슬쩍 이혼과 재혼, 그리고 황혼결혼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면서 혈연의 제약을 극복하고 새롭게 탄생되어야 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핏줄의 제약을 넘어서 가족의 정의를 대처하는 개념으로 식구(食口)를 제안한다. 식구는 “함께 모여서 밥 먹는 우리는 한 가족”으로 정의된다. 이 영화에서 식구는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식구들을 위해 끊임없이 식사를 준비한다. 여기서 아버지의 권위와 위계보다는 어머니의 이해와 자상함이 더 적절한 매개가 된다.
각자의 고단한 삶을 모두 보여준 후 위태로운 남매들이 힘을 얻고 재충전할 수 있는 매개가 바로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이다. 하루도 바람 잘 날 없고 어디 내세울 것도 없는 변변찮은 가족이지만, 이 위태로운 삶에 마지막 안식처는 역시 어머니의 품이다. 어머니가 끊임없이 구워내는 고기밥상은 식사를 같이 하며 외부에서 받은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라는 진심어린 기도이다. 지친 새끼들이 잠시 쉬었다 다시 세상을 향해 날갯짓하며 날아갈 수 있도록 독립시키는 어머니의 역할이 눈물겹다.
그 날갯짓이 자식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 험한 사회에서 별 탈 없이 생존하길 바라는 어미의 간곡한 마음이 드러난다. 낙오자가 많은 현대, 그들을 일으켜 세우는 존재는 가족이며 어머니이다. 영화 <고령화가족>은 잔잔히 들려준다. 슬퍼하지 마라. 비록 내 인생이 화려하게 빛나지는 못했지만 담벼락에 핀 한 송이 꽃처럼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