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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저링>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제대로 무섭다


실화를 소재로 했다고 하니 이 무서움은 영화가 끝나고도 떠날 줄을 모른다.

때는 자유의 시대 1960년대를 막 지난 1971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의 어느 호수 앞 고즈넉한 저택으로 페론 가족은 이사를 온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부부와 다섯 딸들은 화목하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이 집은 으슬으슬 춥고, 썩는 냄새가 나고, 이상한 소리가 난다. 한밤중에 누군가가 자고 있는 소녀의 다리를 잡아당기고, 문 뒤에 선 누군가는 잠이 깬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그 존재는 소녀들의 숨바꼭질에 끼어들어 박수 소리를 내기도 한다. 어떨 때는 오르골의 거울을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순수한 아이들의 눈에는 더 잘 보이고 잘 들리는 존재, 그들은 귀신이다.

엄마 캐롤린은 너무도 무서운 이 일들을 견디지 못하고 초자연 현상 전문가인 워렌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이자 교황청에서 유일하게 엑소시스트(악령 퇴치사)로 인정받은 에드와, 귀신과 대화를 나누는 영매 로레인은 귀신이 출몰한다는 가정을 방문하여 도와준다. 하지만 대개는 자연현상에 의한 사운드 효과라는 것을 확인해주기 일쑤라 그들은 캐롤린의 요구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워렌 부부는 마지못해 페론 저택을 방문하고, 이 사건은 그들이 경험한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사건이 된다.

이 영화가 주는 공포는 괴물 같은 형상의 귀신 모습이나 음침한 음악, 혹은 폭발적인 비명소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스멀스멀 뭔가가 기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 직시하기 두려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 기운과 분위기가 전달하는 공포감이 더욱 무서운 ‘무드(mood)의 영화’다. 귀신의 모습은 교묘한 편집 연출로 위압적인 아우라를 전달하며, 은밀하게 들려오는 숨소리와 속삭임은 불사(不死)의 존재가 곁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주는 압도적 에너지가 공포감을 더욱 배가시킨다. 귀신에게 몰리는 캐릭터들의 시점과 일치하는 카메라는 악령의 집의 현장에 관객이 함께 있다는 현장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공포영화로 미국 개봉 시 10배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실화라는 사실이 주는 무게감, 그리고 야매 퇴마사가 아니라 정통 종교로부터 승인 받은 전문가들의 활약이라는 점이 주는 진실성으로 인해 영화는 정말로 무서운 새로운 현대 공포영화의 전형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진실되게 다가오는 것은 페론 부부가 그들의 소박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몸과 정신을 다 소진해가며 애처롭게 싸운다는 점이다. 강한 엄마 캐롤린의 악령과의 싸움은 무서우면서도 눈물을 흘리게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 정상성과 광기의 경계에 선 한 여성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은 악령보다도 강력한 도구가 된다.

덧붙여, <여고괴담>이나 <링> 같은 아시아 호러가 귀신이 된 존재의 슬픈 사연을 중심으로 했다면, 이 미국 호러는 부를 일구어 가정을 굳건하게 지키려는 노동자 계급의 강박관념이 불러온 억압을 중심으로 한 점에서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독해방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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