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신예 여성감독 알렉스 슈미트의 초현실적 분위기의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 혼성 장르영화. 팀 버튼과 미카엘 하네케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슈미트 감독은 두 소녀의 은밀한 우정을 소재로 한 <포가튼-잊혀진 소녀>에서 동화적인 요소 위에 인간 영혼의 어두운 심연을 포개어 놓는다.
어린 시절, 영원한 우정을 맹세했던 한나와 클라리사. 가족 휴가를 외딴섬에서 매년 함께 보냈던 두 친구는 갑자기 멀어져 소식이 끊기고 만다. 세월이 흐른 후, 30대 중반의 의사가 된 한나는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실려 온 클라리사와 재회한다. 한나는 딸 레아를 동반하고 두 사람은 추억의 섬에서 노인이 된 예전 섬사람들과 마주한다. 한나는 그 섬에 살던 어릴 적 친구 마리아가 25년 전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끔찍했던 기억을 하나둘 떠올린다. 까맣게 잊고 지냈던 수많은 기억의 퍼즐 조각이 맞추어지면서 오싹한 기운이 섬을 뒤덮고 진실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무서운 장면이 있는 공포영화가 아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노래를 속삭이는 어린아이들이 등장하는 첫 장면은 순수한 동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나 인간 내면의 잔인한 면, 특히 아이들조차 남을 괴롭히는데서 쾌감을 느끼는 장면이 이어지면서 인간이 본질적으로 간직한 악마성으로 소름이 돋는다. 순수한 나이 아홉 살에 영원한 우정을 맹세하지만 질투와 집착은 왕따를 낳고, 위축된 약자는 더더욱 초라해지며, 가해자는 더더욱 대담해진다.
영화는 어린 아이들의 순수 이미지에서 출발하여, 성인이 된 여성이 과거의 비밀로 인해 탈출구 없는 미궁에 빠지다가 결말까지 몇 차례의 반전을 거듭하는 잘 구성된 시나리오로 섬뜩한 여운을 던진다. 그 위에 짧게 커트하여 교차되는 편집 효과와 애수어린 음악, 안개로 뒤덮인 어스름하고 추운 섬 풍경을 카메라가 훑는 것으로 불안감이 상승된다. 한편의 감각 영화이다. <여고괴담>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이야기의 진행이 예측가능하고, 반전 후 결말에 도달했을 때 논리의 허약성 때문에 허전함이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데뷔한 젊은 감독의 여물지 않은 재능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독일은 호러영화의 원산지다. 1920년대 표현주의라는 사조 아래 <노스페라투>,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등, 조명 효과와 세트 장식을 극대화하여 인간의 선과 악을 한 화면에 표현함으로써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이들 표현주의 감독들이 할리우드로 건너가, 호러영화와 필름누아르,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개척자가 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독일 공포영화라 더욱 반갑다. 슈미트 감독은 젊은 패기 보다는 전형적인 고전 스타일로 영화를 완성한다. <판의 미로>, <오퍼나지-비밀의 계단>, <렛미인>과 같은 유럽 호러영화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잔혹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이 영화는 신비롭고 서정적인 매력으로 당신을 끌어당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