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문 뒤에 서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문을 열어 달라 힘껏 문을 두드릴 수 없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섣불리 문을 열지 못하는 남녀,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영화의 도입부 삼십여 분은 당대의 시대상과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의 떨림을 목이 메도록 절절하게 스크린위에 펼쳐진다.
무용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단단은 어머니 평완리에게 자신이 공연에서 주연을 맡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하지만 중국의 문화대혁명 기간에 반혁명분자로 몰린 루옌스는 가족이 그리워 유배지에서 도망쳐 10여년 만에 집으로 숨어들어온다.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힌 아버지 탓에 결국 주연을 맡지 못하고, 아버지 루옌스에 대한 기억조차 없는 단단은 그를 고발해 결국 당직자들에 의해 체포되게 한다.
이후 문화혁명이 끝나고 루옌스는 무죄로 인정받아 집에 돌아오지만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평완리와 무용의 꿈을 버리고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단단. 이들 한 가정에게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이후 영화는 단순한 멜로, 신파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신파나 멜로의 최루성 눈물을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가슴 시린 애절한 사랑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허물어진 개인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를 연출한 장예모 감독은 <붉은 수수밭>으로 데뷔한 1988년 이후 수많은 명작들을 내놓은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감독이다. 그의 페르소나 공리와 함께 7년 만에 재회하며 내놓은 <5일의 마중>은 그의 전작 <진링의 13세 소녀>에 이어 엄가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장예모는 10여 년에 이르는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파괴된 한 가정의 비극을 통해 사회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보여주고, 세계적인 거장 감독으로서 면모를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꿈에도 잊지 못하는 사랑하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남자 ‘루옌스’를 연기한 진도명,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빚은 만두를 가슴에 꼭 안고 내달리는 여인 ‘평완리’를 연기한 공리,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안고 완강한 성격에 춤을 추는 소녀 ‘단단’을 연기한 장혜문, 시나리오의 세세한 부분에 대한 해석은 물론 연기력까지 갖춘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캐스팅은 장예모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었고, 거장으로서의 놀라운 그의 능력이다.
올 부산국제영화제의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됐고, 배우 소지섭이 제작에 투자를 해 화제가 되기도 한 <5일의 마중>은 굳이 구구절절한 이야기로도, 그 어떤 화려한 미사여구로 치장해가며 이 작품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저 이 작품만큼은 놓치지 말라고, 절대 놓쳐선 안 될 것이라는 당부의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이 작품을 본 당신은 분명코 올겨울 흩날리는 눈꽃송이를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될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했던 피아노 선율이 들려오면 핑도는 눈물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