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거장이면서 살아있는 전설이기도한 미국의 다이렉트 시네마의 한 장을 연 프레데릭 와이즈만(Frederick Wiseman; 1930~ ) 감독의 영화여서 더욱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이 영화는 매우 지적인 영화임에 틀림없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내내 ‘담론’을 형성할 줄 아는 영국 런던의 지성적인 시민의식에 부러움의 시선을 보냈다. 이 영화를 통해 느낀 부러움은 예술과 삶과 아름다움을 생활의 한 필수적인 요소로 중요시하는 런던 시민들을 향한 경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가지지 못 한 듯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부러움을 ‘우리들’에게 확장하려고 한다. 나는 제3차 대국민 촛불평화행진에 참여했다. 역사상 가장 부패하고 무능하며 반민주적인 정권의 퇴진을 위한 100만의 촛불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 켜질 때 나는 막연한 서구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보태진 부러움을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우리들’에게로 확장하고 싶었다. 영화에서는 ‘내셔널 갤러리’라는 고상한 플랫폼에 다양한 사람들이 사연을 안고 갤러리를 오고 가기 때문에 그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갤러리를 채우고 있다.
더구나 단순히 이 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이 모여서 전체를 이루는 이미지 즉, 다이렉트 시네마가 지향하는 가장 진실한 내셔널 갤러리의 진면목을 감상하는 경이로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광화문에 모인 ‘우리들’은 광화문이라는 광장을 플랫폼으로 삼고, 각각 다른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이 그들만의 이야기를 안고 서로를 나누며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몸으로 외쳤던 이 모든 행위들의 전체적인 조망은 바로 광화문에 모인 이유의 전부인 채로 아름다움임에 틀림없는 것이리라.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름다울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진실’에 가까운 흔적을 보일 때마다 감지되는 어떤 흥분되는 실체와의 조우이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있는 그대로 그 공간을 보여주되 감독이 전달하려는 뚜렷한 작가의식이 고스란히 발현되어 우리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한 공간의 차분한 이야기들을 쌓아 올릴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영화가 모두 끝이 날 무렵, 우리가 쌓아올린 이야기들이 전체적인 조망권 안에 들어 올 때 ‘진실한 한 공간으로서의 내셔널 갤러리’를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 공간이 진실하다는 것은 내셔널 갤러리라는 공간을 표현하려는 영상 예술 안에 마침내 거주할 수 있게 됨으로써 우리는 갤러리의 참 의미를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셔널 갤러리’는 한 미술관의 공간을 통하여 다양한 의견들과 이야기들이 공존하는 현대사회의 이상적인 ‘플랫폼’을 민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민주적’이라는 말은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아니하고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아름다움의 광장에 모인 모든 이들의 삶을 대변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