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왕>이라는 처절하게 사실주의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칸느국제영화제에 초청받고 세계 36개국에서 상영됨으로서 일약 한국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떠오른 연상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 선을 보인다. 데뷔작이 학교 폭력 문제를 다루며 인간의 내면에 공존하는 선과 악의 한 얼굴을 끔찍할 만치 정확하게 직시했다면, 이번에는 종교 문제를 가지고 같은 주제를 담아낸다.
<사이비>의 세계에는 비천하고 줏대 없는 인간들로 득시글거린다. 그 세계는 탈출구 없는 지옥도다. 수몰예정지역인 한 시골 마을에 교회가 새로 생긴다. 그곳에서 활동하는 장로 경석(권해효 목소리)은 신의 질서로 운영되는 기독교 공동체가 정착할 기도원을 건설하겠다는 장밋빛 비전으로 마을사람들의 보상금을 긁어모은다.
그러나 그는 사기꾼이며 현재 수배 중이다. 장로는 젊은 목사 철우(오정세 목소리)를 초빙함으로써 자신의 계획에 신뢰감을 더하여 신도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주정꾼 민철(양익준 목소리)은 대학 입학금으로 쓰기 위해 모아둔 딸 영선(박희본 목소리)의 통장을 훔쳐 노름판에서 몽땅 잃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와 딸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민철은 술집에서 장로 경석과 사소하게 몸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나 민철은 경석이 수배자임을 알아보고 경찰과 마을사람들에게 교회가 가짜임을 알리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경청하지도 않고,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똘똘 뭉쳐 진실을 은폐한다.
고립된 마을 안에서도 홀로 고립된 민철은 유일하게 진실을 말하는 자가 된다. 사소하게 시작된 말다툼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삽화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라서 디테일을 살리기보다는 개성을 강조하는 그림체로 이루어져있건만,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 지옥도의 현장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사실적이다. 초반부터 강렬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충격파를 던지고,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점점 높아지는 강도로 인해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상태로 끝을 맺는다.
영화는 강렬한 플롯 전개와 묵직한 주제의식으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그림체로 이루어진 캐릭터들을 실재처럼 바라보게 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다. 종교와 가부장제라는 현대 사회 갈등의 커다란 영역을 다루지만, 무조건적인 믿음은 대한민국 지금 여기에서, 이념, 지역, 계급, 젠더라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세 명의 주인공 보다는 마음의 위안을 위해 진실에 눈 감아버리고 미몽에 취한 마을 방관자들이야말로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실질적 주제가 된다.
눈 앞에서 목격하고도 기꺼이 속는 자들, 개성 없이 한 덩어리로 뭉쳐서 장밋빛 헛된 천국의 약속을 의심없이 믿어버리는 자들, 남의 죽음과 고통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방관하는 약한 자들, 이들이야말로 바로 우리 모두의 모습인 것이다. 예정된 파국 뒤에 또 다른 믿음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은 충격적이다. 사회고발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연상호 감독은 이번에도 대한민국 사회를 최전선에서 고발하는 대담한 작가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맘껏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