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 슬립’(2014, 터키, 196분), 동면이다. 터키 누리 빌제 세일란(1959~ ) 감독의 작품으로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제인 캠피온을 비롯한 심사위원들로부터 ‘완벽한 리듬의 수작’, ‘3시간 16분의 전적인 행복’이라는 평을 들었다.
터키 카파도키아가 배경이다. 카파도키아는 ‘스타워즈’에서 어린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고향별로 나왔던 고산 화산지대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매섭게 부는 그 푸석한 돌과 눈의 땅. 카파도키아의 동굴을 개조해 호텔을 운영하는 주인공 아이딘(할룩 빌기너)은 전직 배우 출신으로 신문 칼럼니스트에 신앙심이 깊은 인물이다. 부와 명예, 거기에 지적 자신감, 젊은 미모의 아내까지 그의 삶은 참으로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어느 날 어린아이의 돌팔매질로 그의 삶은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집세 독촉에 불만을 품은 가난한 세입자의 어린 아들이 던진 돌이었다. 이를 계기로 자신을 다시 보게 된다. 누이 네즐라(드맥 액백)와 아내 니할(멜리사 소젠)과 인식차가 노정되면서 정말 견고하다고 믿었던 자신이 돌로도 깎을 수 있는 응회암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의 양심은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고, 도덕성은 감각을 잊은 채 ‘겨울잠’을 자고 있었고, 고귀했던 믿음은 사실은 속물의 아집이었다는 각성이 고통스럽게 찾아온다.
‘윈터 슬립’은 몇 안 되는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사소한 갈등, 우렁차지 않은 약소한 에피소드로 긴 러닝타임을 끌어간다. 그러나 유려한 영상과 곳곳에 쳐놓은 상징과 가슴을 파고드는 대사로 관객을 압도한다. 심지어 20분이 넘는 시퀀스를 두 사람의 대화로만 채워가는 용맹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신을 변호하는 주인공과 얼음을 깨듯 그의 위선을 쪼아대는 여동생 에즐라의 대화는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로운 스릴까지 느끼게 한다. 특히 서툰 동정심으로 젊은 아내 니할이 내민 돈을 아이의 아버지가 불에 넣어버리는 장면에서는 그 어떤 서스펜스 영화보다 더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자신의 껍질을 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소한 습관조차 바꾸기 힘든 일상에서 자신이 쌓아온 인식을 바꾸는 것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윈터 슬립’은 ‘당신은 허위의식과 위선의 달콤한 잠에 빠져 동면 중이지 않은가?’라는 준엄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벗겨낸 그 속에 ‘인간다움’이란 깨달음을 채워 넣어준다.
‘윈터 슬립’은 과장된 결말과 대오각성의 국면, 극적 화해라는 간혹 영화라는 장르가 저지르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깊고 빠른 물살이 흐르는 얼음 속과 달리 얼음 위에는 그리 큰 변화가 없다. 그렇지만 관객은 이미 얼음 속 급물살에 휩쓸려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잠을 이룰 수 없는 경험을 겪게 된다.
이 작품은 안톤 체홉의 ‘뛰어난 사람들’(1886년)과 ‘아내’(1892년)를 모티브로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진정성 없는 주제와 어설픈 스토리, 독창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최근 한국영화를 보면서 터키에서 날아온 ‘윈터슬립’은 참으로 영화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