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전환을 얼마 남기지 않은 ‘선희’는 대형할인매장 ‘더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급작스레 연장근무를 하라면 군소리 없이 따르고, 동료가 억울하게 인격적인 모독을 당해도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선희는 정규직 전환이 되면 먼저 아들 휴대전화부터 바꿔주겠다는 약속도 얼른 지켜줘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악착같이 일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우는 ‘혜미’, 이십 년 동안 청소밥을 먹으면서도 아무소리 안했던 ‘순례’, 후덕하고 입심 좋은 계산원 ‘옥순’, 대학을 졸업하고 50번 넘게 면접을 치르며 취업준비에 지친 미진도 정규직에 대한 꿈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곁의 엄마, 아내, 딸이며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웃들이다.
그랬던 이들이 오늘 해고됐다. “내가 열심히 하면 회사도 좋고, 나도 좋다”는 생각으로 일했건만, 급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은 비정규직 여성들의 아무도 몰랐던 뜨거운 투쟁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부당해고를 당한 이후 이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카트>는 우리나라의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을 다룬 작품이다. 특히 이 영화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오천 명이 참여해 약 2억 원을 모아 제작됐다. 또 이 작품은 대기업 배급사의 부당함에 맞서 한국영화산업의 불합리한 환경을 개선하고 공정한 영화시장을 조성하기 위해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소속의 10여개 회사가 설립한 ‘리틀빅픽쳐스’라는 배급회사가 상영관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나는 여러 모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부지영감독은 2009년 첫 장편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가 부산국제영화제, 까를로바리국제영화제, 토쿄국제여성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프로젝트 <시선 너머>와 전주국제영화제 <숏!숏!숏!>에 참여했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성감독이다. 그는 <카트> 연출의 의미를 “지금 꼭 이 시대에 있어야 하는, 만들어져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중요한 시도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미모는 물론 연기력에서도 손색이 없는 염정아는 비정규직 근로자 ‘선희’를 연기하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예쁘고 용기 있는 엄마의 자리에 등극한다. 가난한 엄마와 응석받이 동생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춘을 보내는 고등학생 ‘태영’은 수학여행을 가기위해 편의점 알바를 시작하지만, 그 역시 엄마 못지않은 미성년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현실에 처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노동현장의 부당함을 영화에 담다보면 자칫 구호나 선동이 난무하는 정치적인 장면들만 스크린에 난무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따뜻한 가족의 이야기, 동료의 이야기, 학교와 사회의 변두리에서 겪는 청춘들의 일상 그리고 우리 사회의 벌어지고 있는 모르는 채 지나쳤던 현실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사회적 메시지와 상업적 영화가 찰떡궁합처럼 잘 빚어져 스크린에 펼쳐놓은 첫 작품이라 감히 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