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초능력을 가지고 싶을 때가 있다. 어린 시절 공부를 하지 않고 놀다가 시험 치기 전날 밤이 되서야 ‘선생님이 낸 문제가 제 눈에 보이게 해 주세요’하고 간절히 기도한 경험이 있다. 물론 내 기도는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영화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을 간접 체험하는데 요긴한 매체다. 영화 <사이코메트리>는 평범한 인간이 현실에서 지니기 힘든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한국영화에 끌어왔다.
맨날 사고만 치고 실적도 꼴지인 양춘동(김강우) 형사의 관할구역에서 여자 아이가 유괴 되고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양춘동은 거리에서 본 벽화가 사건의 현장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림을 그린 김준(김범)을 뒤쫓기 시작한다. 그러나 김준은 사람의 손을 잡거나 물체와 접촉하면 과거의 기억이나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초능력자인 ‘사이코메트리’이지 범인은 아니다. 외롭게 숨어서 살고 있던 김준은 초능력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라는 양춘동의 설득으로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발휘해 유괴범 잡기에 동참하게 된다.
내가 만약 시험 치기 전날 악수를 빙자해 선생님 손을 덥석 잡는 순간 출제된 시험지가 다 보이는 ‘사이코메트리’였다면 인생이 행복했을까. 그건 아니라고 영화는 단호히 말한다. 영화는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초능력을 가진다는 것은 본인도 힘들게 하지만, 결국 주변사람들도 힘들게 해서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소재로 ‘사이코메트리’라는 초능력은 꽤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혹시 ‘사이코메트리’ 아냐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예상대로 영화가 차분하게 진행이 된다. 미스터리 장르영화를 보는 가장 큰 재미는 반전에 있는데, 아쉽게도 영화 <사이코메트리>는 반전의 기쁨을 주지 않는다.
미스터리 수사극을 보는 또 다른 묘미는 반전과 함께 쫓고 쫓기는 긴장에 있다. 긴장감 넘치는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는 것은 양춘동과 김준의 마음 속 깊이 묻어둔 아픔이 치유되고, 두 남자가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는 과정이 모두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영화가 끝나기 40분 전쯤 되어서야 이 과정을 모두 마친 두 남자가 합심해서 수사를 시작한다. 그나마 단서를 하나씩 발견해가면서 사건의 큰 틀을 맞춰나가는 기존의 수사극과 달리, 이 영화는 수사 과정을 대부분 ‘사이코메트리’ 능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긴박하게 진행되는 맛이 떨어진다.
그러나 영화 <사이코메트리>가 정작 놓치지 않는 건 코믹적인 요소이다. 작은 재미를 주려는 감독의 노력은 간간이 그 재치를 발휘한다. 양춘동이 다단계 회사에 빠져 그동안 모은 돈과 자동차를 팔아 판매왕으로 뽑히는데, 그때 상을 주는 다단계 회사의 대표로 출연한 개그맨 김준호는 단연 돋보이는 까메오다. 그리고 전직 사기꾼 출신인 양춘동의 친구 양수(이준혁)는 영화가 심심할 때마다 소금 역할을 한다. 비록 이들의 출연으로 조금 덜 긴장되고 조금 덜 끔찍한 미스터리 수사극이 되었지만, 영화 <사이코메트리>는 눈이 아름다운 배우 김범과 코믹도 되는 배우 김강우. 이 두 남자가 서로를 따뜻하게 치유하는 힐링 시네마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