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좋은 시설을 자랑하는 영등포CGV의 스타리움상영관. 넓고 안락한 좌석에 앉아 최고의 음향시설과 대형스크린으로 보기에 너무나 미안한, 아니 죄스러운 영화가 있다.
공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시민 상현은 병으로 아내를 먼저 보내고, 딸 하나만 바라보며 사는 ‘딸바보’다. 직장에서 채근하는 생산량을 채우느라 야근하던 날 중학생 딸 수진이는 집에 돌아오지 않고, 빈 목욕탕에서 성폭행 당한 채 숨진 모습으로 발견된다. 경찰에선 상현에게 그저 ‘기다려보라’란 말만 되풀이하고 어느 날 익명의 제보자가 보내준 문자는 수진이가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보며 키득거리는 철용이를 마주하게 된다. 이성을 잃고 철용을 죽인 상현은 공범인 두식을 찾아 무작정 강원도를 향해 떠난다.
특히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는 가해자들, 그리고 이들 가해자들을 감싸고 피해자를 오히려 ‘악의 축’으로 몰아가는 철면피의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무능력한 공권력, 이 모든 것을 영화를 통해 바라보는 관객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들의 모습은 비단 영화 속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널려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이 험악해진 탓일까? 우리사회에 미성년자 범죄는 늘고 있고, 게다가 더욱 더 잔인해져가는 형편이다. 하지만 현행법은 이들 미성년자들에게 이른바 교화라는 허울을 쓰고 면죄부를 던져준다.
이 영화는 일본 최고의 스릴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한국의 현실에 맞춰 연출은 물론 캐스팅도 완벽하게 해냈다. 원작과 차이가 있다면 원작 소설은 철저하게 소년범죄에 대한 처벌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점에 치중한 반면, 한국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사건의 중심에 선 모든 인물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골고루 바라보며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폭넓은 논의를 자아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스테리 스릴러 <베스트셀러>에 이어 두 번째 작품으로 이 영화를 연출한 이정호 감독은 원작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한국의 현실과 자신의 색감을 잘 살려 연출해냈다.
특히 어린 딸을 잃은 상현 역의 정재영은 처절한 복수를 통해 뜨거운 부성애를 절절하게 토해낸다. 또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돌변한 상현을 쫓는 형사 억관을 연기한 이성민은 복수의 끝은 가해자가 아닌 복수를 하는 당사자인 본인을 죽이는 것이라 말하며 상현을 만류한다. 법의 집행자로서 그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지만 결국 자신과의 약속, 사회와의 약속인 ‘끝까지 지켜봄’을 실행한다.
122분 동안 불편하기 짝이 없는, 보고 상영관을 나서면서도 무거워진 발걸음이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 영화지만, 이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제목의 칼날이 방황하는 이유는 피해자와 가해자 중 어느 쪽을 겨눠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현실을 비유한 것이다.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부조리들을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눈 감은 채 외면하였던 당신, 이제 우리 사회의 정의를 위해서 한 번쯤 깊은 생각을 가져봄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