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2월 말이면 온 세상 영화인은 물론 영화관객들이 주목하는 빅 이벤트가 미국 할리우드의 돌비극장에서 벌어진다. ‘오스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바로 그것이다. 올해 87회를 맞은 이 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등 4관왕을 기록한 영화 ‘버드맨’은 진지함이 가득하지만 밸런타인데이의 달콤한 초콜릿 같은 새까만 블랙 코미디로 버무려 놓은 수작이다. 30년 전 블록버스터 ‘버드맨’의 주연이었지만 속편 출연을 거절한 뒤 추락을 거듭해온 퇴물 배우 ‘리건’은 예순의 나이에 남은 재산을 몽땅 쏟아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뉴욕 연극 무대에 올리려 한다. 하지만 뜻하지 않던 사고들이 이어지고 그와 그 주변에는 현실과 환상,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이게 된다. 자의식 과잉의 조연 배우 마이크(에드워드 노턴)까지 끼어들며 무대는 난장판이 되고 엎친 데 덮친 걸까? 옛 가상 영화 속 버드맨이 머릿속에서 그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이 작품을 연출한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감독은 멕시코 출신으로 첫 장편 영화인 <아모레스 페로스>로 칸 영화제에서 비평가주간상을 수상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린 천재감독이다. 젊은 시절 경험했던
화려한 색깔과 요란한 소리들이 그득한 시대에 기적처럼 깔끔하고 숭고한 작품이 우리 곁을 찾아왔다. 흑백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두 개의 색깔로 온갖 색감을 만들어내고, 4:3이라는 독특하고 감각적인 정사진의 화면구도로 구성된 작품 <이다>가 그것. 고아로 수녀원에서 자란 소녀 ‘안나’는 수녀가 되기 직전, 유일한 혈육인 이모 ‘완다’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녀를 찾아간다. 하지만 이모로부터 ‘안나’가 유태인이며 본명은 ‘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혼란에 빠진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진 ‘이다’와 이모 ‘완다’는 자신들의 가족사에 얽힌 비밀을 알기위한 여행을 떠난다. 끝없이 내리는 눈발, 그 속을 하염없이 정처 없이 바라보는 관객들은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스크린 밖 객석까지 그득히 쌓이는 아름다운 눈발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작품을 연출한 파벨 포리코브스키감독은 폴란드 출생으로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영화를 시작해 2005년 <사랑이 찾아온 여름>으로 영국아카데미상에서 영국영화상을 받는 등 실력파 감독으로 십여 년의 심사숙고를 거쳐 준비해 일 년이 넘는 프리프로덕션 기간을 거쳐 시나리오를 완성시켰다. 소녀 ‘안나’역을
머리에 수건을 질끈 묶고 칼과 표창으로 무장한 녹색 거북이들, 영웅 ‘닌자터틀’을 기억하는가?뉴욕시는 어느샌가 악당 슈레더와 그의 조직 ‘풋 클랜’이 장악해버린 후 범죄와 폭력이 난무한다. 신참이지만 의욕에 가득한 열혈 방송기자 에이프릴은 카메라맨 번과 함께 그들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나서고, 슈레이더와 손잡은 사업가 에릭 삭스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한편 하수구에서 동양무술 고수인 생쥐 스승 스플린터에게 사사 받으며 살던 네 마리의 거북이 레오나르도, 도나텔로, 라파엘,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암흑으로 변해가는 도시를 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와 ‘풋 클랜’ 일당을 청소한다. ‘코와붕가(cowabunga)’를 외치며 피자나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지만 용감무쌍한 10대 거북이 영웅인 ‘닌자터틀’은 지하철에서 난동을 벌이는 악당들을 무찌르고 돌아가는 길에 에이프릴과 마주친다.1984년 미국의 코믹북 아티스트였던 피터 레어드와 케빈 이스트먼이 심심풀이로 그렸던 그림에서 시작된 ‘닌자거북이’는 당시 고독하고 황폐한 영혼의 영웅들에게 길들여졌던 코믹북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비록 1권은 그들이 돈을 빌려 3,000부를 인쇄했지만 2권은 15,00
밀림을 가로지는 헬리콥터의 흔들림과 함께 등장한 세리자와 박사와 그의 조수 바비안은 필리핀에서 거대한 고질라 화석을 발견한다. 아빠의 생일을 맞아 축하해드릴 생각에 여념이 없는 소년 포드, 그의 아버지 조 브로디는 아내 산드라와 함께 일본 잔지라의 원자력발전소에서 근무한다. 최근 이상한 진동을 감지한 조는 방사능 보호복을 입고 작업하러 들어가는 아내에게 조심하라 얘길 하지만, 결국 사고가 일어나고 거대한 쓰나미가 원자력발전소를 집어 삼킨다. 그리고 15년이 지나 폭탄 해제 전문가인 해군장교로 성장한 포드가 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어느 날 일본의 영사관으로부터 아버지 조가 불법으로 방사능 유출지역에 들어갔다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아들과 마찬가지로 옛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는 ‘정부가 무언가 숨기려고 사고 지역을 통제하고 있다’며 함께 증거를 수집하자고 설득한다. 그리고 이들 부자 앞에 무언가가 발전소 원자로에서 방사능 물질을 먹고 살았으며 15년 후에 깨어났다는 정부가 숨기고 있던 엄청난 사실이 드러난다. 1954년 일본에서 이시로 혼다 감독의 손으로 창조된 영화 <고지라>가 60년이 지나 원자력 시대의 공포, 지진과 쓰나미라는 거대
동양의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유럽으로 입양되어 온 소년, 영화는 한국의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아리랑’을 노래하는 풍경과 식당에서 남들보다 늦게까지 밥 먹는 소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따뜻한 양부모와 친절한 형제들의 배려 속에 자라지만 그는 주위의 기대에 엇나가며 내성적이고 말썽 많은 아이로 성장한다. 1950년 후반 부모에게 버림받고 거리를 헤매다 경찰의 손에 이끌려 고아원에 보내지고 벨기에의 한 부모에게 입양돼 살아가게 된 소년 융 에낭의 고향은 한국이며, 한국 이름은 전정식. 융의 뒤를 이어 또다시 한국에서 여동생이 입양돼 오지만 그는 냉랭하기만 하다. 아니 그녀에게 더 냉랭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다른 한국인 입양아를 피해 다른 길로 돌아가고, ‘동양꼬마’라고 부르며 나직하게 벌어지는 친척들의 차별, 말썽을 피운 소년을 ‘썩은 사과’라고 부르며 꾸중하는 어머니 밑에서 그는 더욱 삐뚤어져간다. 주위의 다른 입양아들이 공통되게 겪는 소외감과 정체성 혼란으로 소년은 괴로워한다. 스스로 한국을 부정하며 일본문화에 심취하며 ‘한국인이 싫으니 일본인이 되겠다’며 고집부리고, 맨밥에 핫소스를 과다하게 뿌려먹으며 자신을 괴롭히는 청소년기를 거친다. 그런 그의 유일한 도
가까운 미래도시 시카고. 잦은 전쟁과 자연재해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인류는 거대한 장벽을 세워놓고 그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다. 인류는 하나의 사회, 다섯 개의 분파로 나뉘어 자신이 속한 분파의 행동규범에 절대적으로 따르며 철통같은 통제 속에서 살아간다. ‘핏줄보다 분파’라는 슬로건으로 살아가는 이 사회는 열여섯살이 되면 평생을 살아갈 분파를 결정하기 위한 테스트를 받고 이에 순응하며 살아가야한다. 다섯 개의 분파에 속하지 않는 이들은 무분파로 철저히 외면당하며 사회의 치안을 맡고 있는 ‘돈트리스’로부터 위협당한다. 이타심을 생활 모토로 하는 ‘애브니게이션’에 속해있던 트리스는 적성검사에서 판정 결과가 불분명한 ‘다이버전트’임을 알게 되지만 그것을 숨기고 ‘돈트리스’를 선택한다. ‘돈트리스’ 입문과정에서 최고의 지도교관 포의 강렬한 리더쉽을 따르며 훈련을 받는 도중 ‘돈트리스’안에 내재된 거대한 음모를 접하고 위험을 무릅쓴 채 체재에 정면으로 저항하게 된다. 영화는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물론 높은 건물을 기어오르거나 온몸으로 격투를 벌이는 리얼 액션으로 가득하다. 격투장면에선 세계적인 복싱선수 조지 포먼의 복싱자세를 응용해 자세를 만들어 선보
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좋은 시설을 자랑하는 영등포CGV의 스타리움상영관. 넓고 안락한 좌석에 앉아 최고의 음향시설과 대형스크린으로 보기에 너무나 미안한, 아니 죄스러운 영화가 있다. 공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시민 상현은 병으로 아내를 먼저 보내고, 딸 하나만 바라보며 사는 ‘딸바보’다. 직장에서 채근하는 생산량을 채우느라 야근하던 날 중학생 딸 수진이는 집에 돌아오지 않고, 빈 목욕탕에서 성폭행 당한 채 숨진 모습으로 발견된다. 경찰에선 상현에게 그저 ‘기다려보라’란 말만 되풀이하고 어느 날 익명의 제보자가 보내준 문자는 수진이가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보며 키득거리는 철용이를 마주하게 된다. 이성을 잃고 철용을 죽인 상현은 공범인 두식을 찾아 무작정 강원도를 향해 떠난다. 특히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는 가해자들, 그리고 이들 가해자들을 감싸고 피해자를 오히려 ‘악의 축’으로 몰아가는 철면피의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무능력한 공권력, 이 모든 것을 영화를 통해 바라보는 관객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들의 모습은 비단 영화 속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널려있는 것이 현
1961년 11월 22일, 미국 텍사스주 델러스 시민들은 살짝 흥분에 들떠있다. 존 F.케네디, 미국에서 가장 젊고 추진력 넘치는 매력적인 대통령이며 재선을 코앞에 둔 그가 이들을 방문하기 때문.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오후에 방문하는 그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정오가 막 지난 무렵 직원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여유로운 섬유공장 사장 자프루더는 무개차를 타고 지나는 케네디대통령 부부의 모습을 새로 산 8미리 필름 카메라에 담으며 흥분을 멈추지 못했다. 그 순간 세 발의 총성이 울리고 아수라장이 된다. 경악하는 그의 손엔 케네디대통령의 마지막 순간 26초가 생생하게 담긴 카메라가 들려있다. 당직실 한 구석에서 모자란 잠을 자던 파크랜드 메모리얼병원 2년차 레지던트 짐 캐리코는 전화를 받고 환자를 보기 위해 응급실로 내려온다. 잠시 후 난데없이 중무장을 한 경호원들과 함께 들어온 침대에는 총탄에 머리가 깨져버린 대통령이 누워있다. 대통령 방문 소식을 라디오를 통해 들어가며 서류를 뒤적이며 평범한 노동자 로버트 오스왈드, 대통령 저격 소식에 이어 동생의 이름을 듣고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케네디 암살 50주년이었던 지난해 만들어진 이
얼기설기 짜진 판자 사이로 로데오 경기가 내다보이는 어두운 실내엔 매캐한 먼지와 뒤범벅된 땀 사이로 거친 숨소리를 내며 난잡한 섹스에 탐닉하는 카이저 수염의 독특한 ‘텍사스 싸나이’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 분)의 적나라한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청바지에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쓰고, 뒷주머니에 꽂아놓은 싸구려 술병을 홀짝이며, 로데오로 사기를 치고, 욕지거리가 절반인 불량기 넘치는 전형적인 마초남성. 문란하고 무절제한 구제불능이지만 제법 전기기술자로 인정받던 이 사내는 어느 날 전기감전 사고로 병원에 실려가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 양성 판정을 받으며 30일밖에 살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운명을 맞게 된다. 에이즈(AIDS)는 ‘록 허드슨 같은 호모들이나 걸리는 병’이라 비아냥거렸던 우드루프는 자신의 운명에 분노하다 차츰 살아야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제약회사에서 신약 임상실험 중인 약품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결국 이 약물의 유해성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멕시코로 떠나 대안적인 약물요법과 치료를 받아 생명을 연장하게 된다. 영화 시작의 배경이 되는 1985년 세계적인 섹시스타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로 사망한 해이며, 영화의 이야
흰 눈이 가득 내린 한적한 시골. 대중교통수단도 없는 적막한 이곳에 멋들어진 펜션이 지어져 있다. 요즘처럼 ‘힐링’을 꿈꾸는 도시인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곳에 파묻혀 며칠만 지내면 몸도 마음도 새롭게 충전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이 모두 자기 마음대로 될쏘냐? 허세 여행자 ‘상진’은 시나리오를 마무리하기 위해 홀로 깊은 산속 주인 없는 펜션을 찾아온다. 어차피 홀로 ‘계란 다이어트’를 하며 글쓰기로 맘먹은 터라 시골 정류장에서부터 마주친 동네 청년 ‘학수’의 지나치게 솔직함과 친절, 그리고 아는 체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얼른 시나리오가 마무리되어야 여자후배를 불러 제작자에게 받아온 와인을 맛보는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에 글쓰기를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적막을 깨며 들리는 총소리와 펜션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사냥꾼. 그리고 다짜고짜 하룻밤만 묵게 해달라는 무례한 사람들 탓에 마음만 초초해간다. 그리고 폭설이 내려 모두가 펜션에 고립된 날, 상진은 손님 중 한명의 피 흘린 시체와 마주친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이고, 누가 이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일까? 영화의 시작에서 상진의 “대체 왜 이런 일이
2013년 10월 29일 늦은 여덟시,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복합상영관. 15년 만에 재개봉하는 허진호감독의 장편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의 특별상영이 시작됐다. 상영이 끝나고 한 시간에 걸친 관객과의 대화, 또 한 시간동안 관객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는 허감독을 바라보며,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엔딩이 주는 감동이란 생각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동안 15년의 세월이 흐르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날 상영에선 영화의 초입부가 살짝 떨리며 지직거리는 흡사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필름영화를 보는 듯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선명한 화질과 깨끗한 사운드로 관객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날 모든 행사를 마친 허감독은 차를 마시며 “초반부도 그렇고 좀 더 보정을 마치면 개봉할 땐 아주 말끔한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얘기했다. 쥬세페 토르나토레감독의 영화 ‘시네마천국(1988)’을 보면 자전거에 필름이 담긴 통을 싣고 두 마을의 극장을 오가며 운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이 아주 옛날 어쩌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겠지만 몇 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목격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