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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네마 전환에 따른 가상 필림값 논란

디지털 세상, 디지털 시네마의 명암…필름 없는 영화관이 불러온 VPF논란은 무엇일까?

2013년 10월 29일 늦은 여덟시,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복합상영관.

15년 만에 재개봉하는 허진호감독의 장편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의 특별상영이 시작됐다. 상영이 끝나고 한 시간에 걸친 관객과의 대화, 또 한 시간동안 관객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는 허감독을 바라보며,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엔딩이 주는 감동이란 생각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동안 15년의 세월이 흐르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날 상영에선 영화의 초입부가 살짝 떨리며 지직거리는 흡사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필름영화를 보는 듯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선명한 화질과 깨끗한 사운드로 관객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날 모든 행사를 마친 허감독은 차를 마시며 “초반부도 그렇고 좀 더 보정을 마치면 개봉할 땐 아주 말끔한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얘기했다.

쥬세페 토르나토레감독의 영화 ‘시네마천국(1988)’을 보면 자전거에 필름이 담긴 통을 싣고 두 마을의 극장을 오가며 운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이 아주 옛날 어쩌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겠지만 몇 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영화란 무엇인가?! 셀룰로이드 필름에 입혀진 연속된 사진들을 영사기계의 빛을 통해 스크린에 쏘고, 그 이미지를 소리와 함께 감상하는 종합예술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필름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 대신 중앙서버에서 여러 스크린으로 영화파일을 전송해 상영하는 디지털 배급에 의한 디지털 상영이 자리하게 됐다.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2001년만 해도 전 세계에 41개에 불과하던 디지털 상영관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2005년이다. 하지만 2013년 10월 현재 전국 1967개 상영관 가운데 디지털시네마 상영관은 1863개로 95%에 이른다. 더 이상 필름이 돌아가며 찰칵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고, 주룩주룩 내리는 비처럼 스크래치가 가득한 영화를 보는 일은 사라진 것이다.

디지털시네마란 영화를 필름이 아닌 디지털 파일로 제작해 네트워크망을 통해 영화관에 전송한 뒤 디지털 영사기로 상영하는 방식으로 (디지털시네마회사 관계자의 주장에 의하면) 제작, 배급, 영화관사업자가 모두 상당한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디지털시네마가 자리 잡은 것은 2007년으로 당시 CGV와 롯데시네마가 각각 50%를 출자해 디시네마코리아(D-Cinema KOREA, 이하 DCK)를 설립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시 국내 상영관의 5%에 불과했던 디지털상영관이었지만 ‘업계의 폭넓은 참여를 유도해 국내 디지털시네마 사업 발전에 기여 하겠다’는 포부를 보도자료를 통해 밝히며 DCK는 출범했다.

이 회사는 디지털시네마의 확대를 위해 디지털 영사기를 설치하는 영화관에 기존 필름 프린트 제작비에 상응하는 가상 프린트 비용(VPF:Virtual Print Fee, 이하 VPF)을 배급사에서 지불하게 하는 큰 혜택을 주게 된다. 하지만 DCK의 설립 당시부터 영화계의 한편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그것은 아직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결국 지난 10월 초 영화 ‘괴물’과 ‘26년’을 제작한 영화사 청어람은 DCK를 상대로 영화배급사 디지털상영 시스템 이용료 청구에 대해 채무부존재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VPF 지급을 거부했다.

여기서 VPF와 디지털시네마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DCK가 설립되던 2007년 당시 상영관에서 디지털 영사시스템을 설치하는 비용이 최소 팔천만원에서 일억원 소요됐다. DCK는 이 비용 중 삼천만원을 극장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디지털 상영에 해당하는 영화의 투자배급사에서 VPF로 받아 충당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이에 상영관 입장에선 비교적 적은 돈을 투자해 영사시설을 새롭게 할 수 있으며 신기술을 도입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DCK의 주장에 의하면 디지털시네마 도입의 가장 큰 장점은 비용절감이라고 했다. 비록 필름영사시스템의 2배에 가까운 초기 설치비용이 부담되지만, 배급부문의 경우 프린트비용(당시 프린트 1벌 당 약 200만원 소요) 보다 낮게 책정된 VPF로 인해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약 2000개의 상영관 당 연평균 15~20편의 영화를 상영한다면 약 3~4만개의 필름 프린트가 제작되는데 이에 필요한 600억~800억 원이 디지털 시네마 사업이 전개되면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창 디지털로 영화제작이 이뤄지던 당시 다시 키네코작업을 통해 필름으로 전환해 배급·상영하던 후반작업 과정을 줄이고, DVD나 VOD 등 부가판권을 위한 포맷 전환 비용 또한 줄일 수 있어 ‘영화산업에 있어 상영부문의 디지털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영화 산업계에서 강하게 펼쳐지기도 했다.

결국 필름이 아닌 동영상파일로 보관된 영화는 반복상영해도 고화질의 영화를 그대로 감상할 수 있고, 필름 제작 및 현상·자막·배송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별로 기존 필름에 비해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장점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영화를 제작하는 추세로 인해 저예산으로 다양한 영화가 제작되는 여건이 마련되며 이를 상영하기 용이하게 된다는 점이 한편에선 설득력을 지니게 됐다.

하지만 영화산업의 한편에서는 이런 DCK의 주도적인 디지털시네마 도입에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CGV와 롯데시네마라는 대기업이 주도하에 이뤄지는 디지털시네마 구축에 대해 ‘겉으로는 디지털시네마 영사기와 서버의 대량 구매를 통해 구매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네트워크를 구축해 국내외 영화의 디지털 배급망을 장악하려는 의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런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얘기한다.

첫째, 디지털시네마 설치 업체인 DCK가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되고 이어 영세한 영화사를 상대로 강력한 가격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둘째, 디지털 배급망 및 유통망 장악이다. 디지털시네마 시스템이 구축되고 네트워크가 연결되면 영화사는 그 네트워크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영화를 극장에 공급할 수 없게 된다. 거대 디지털 유통망을 확보 하고 있는 DCK에 완전 종속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셋째, 디지털시네마 설치를 내세워 개별 극장을 손쉽게 체인점으로 바꾸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시스템은 시설 투자비와 인건비가 직접 투자되는 직영점보다는 브랜드만 빌려주고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챙길 수 있는 위탁점 확장을 꾀할 수도 있다. 각 지역의 개별 극장을 포섭해 위탁점으로 전환시키면 영화 시장 독점을 더욱 공고하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2007년 이후 지금까지 영화계에서는 여러 차례 이런 문제에 대한 이의 제기가 일었다.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것으로 디지털 시네마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배급사나 극장이 서비스 제공자에게 지급하는 대금인 VPF를 제작자에게 전가하는 관행이 대기업의 전횡근거로 제시됐다.

이에 지난해 7월 16일에는 최광식 문화부장관과 영화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영화 동반성장 이행협약’을 맺는 자리에서 ‘영화의 VPF 정산 정보를 공개해 적정 영화기술 요금체계를 정비하고 제작자에게 전가하는 관행을 뿌리 뽑자’고 합의 했다. 하지만 이후 이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고, 지난달 1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원사인 영화사 청어람이 DCK를 상대로 ‘영화배급사 디지털상영 시스템 이용료 청구’에 대해 채무부존재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DCK와 체결한 디지털 시네마 이용계약이 공정거래법에 위배되는 계약이었으므로 VPF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내용의 소송이다.

같은 달 21일 기자들과 만난 간담회자리에서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대기업의 체인 극장이 우월적인 지위를 내세워 영화사에 많은 피해를 입혔다. 프로모션을 한다는 이유로 콘텐츠 권리자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7~10%의 마케팅 비용을 요구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영화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많은 투자자의 도움을 받는다. 상영관이 온전하게 열리지 않으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26년’ 역시 VPF 비용을 내지 않겠다고 하니 극장에서 영화를 내리는 사태가 발생했고, 우리는 할 수 없이 비용을 내겠다는 계약을 해야 했으며 이후에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게 됐다. 노예계약이나 마찬가지다. 현재는 영화진흥위원회의 법률자문을 구해 소송을 준비 중이다”고 얘기했다.

많은 영화인들이 이 사태를 지켜보며 하는 얘기는 ‘필름이 없는데 필름 값을 내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아직 DCK로부터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없지만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국외 직배사와는 가상필름비 지급 시한을 ‘최대 10년’(2020년까지)으로 계약서에 명시했지만, 국내 배급사들이 복잡한 계약서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라며 “지급 시한이 되기 전이라도 초기 디지털 영사기 비용 정산이 끝나면 회사는 없어지거나 다른 사업을 찾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필자는 이 글을 준비하며 여러 채널로 DCK의 공식입장을 듣고자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현재 한국영화시장의 다각적인 상황과 2005년 이후 디지털시네마 시스템의 도입과정을 골자로 이번 사태를 살펴봤다. 한국 영화를 관람하고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젊은 청년으로서 앞으로도 한국영화시장에 대해 주의 깊게 살펴봐주길 바란다. 적어도 내가 낸 관람료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그것이 한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피땀 흘린 영화인들에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보는 것이 더 뿌듯한 영화 관람이 되지 않을까? 자, 그럼 중간고사를 마친 농익은 가을밤, 한 잔의 막걸리나 소주도 좋지만 한국영화 한 편을 선택해 극장으로 달려가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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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