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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타 음악, 21세기를 울리다.

알 수 없는 뭉클함을 준 건 그 과정과 음악이 주는 아날로그의 힘


● 통기타 음악, 21세기를 울리다
한 줄 한 줄 뜯으면 현의 울림이 만들어내는 그 정서적 멜로디에 한없이 빠져들게 된다. 열정적으로 코드를 짚어가며 치면, 강렬한 리듬과 비트까지 느낄 수 있다. 때때로 통을 두드리면 이 악기는 타악기로 변신한다. 기타는 그 치는 방식과 또 치는 사람에 따라 수만 가지의 음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불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기타가 좋은 것은 목소리와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는 거다. 그래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면 그 음악적 감성 위에 얹어진 하나하나의 가사들이 되살아난다. 통기타 음악의 가사들이 그토록 시적으로 대중들의 귀를 적시는 건 바로 이 기타라는 악기가 가진 정서적 분위기 덕분이다.

60년대 말, ‘세시봉’을 중심으로 피어오른 통기타 음악은 70년대로 고스란히 이어지면서 당대의 청년문화를 이끌었다. 통기타와 생맥주, 장발로 상징되던 자유분방한 청년문화는 숨막히는 개발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숨통을 틔워주었다. 라이브 중심의 음악들이 갖는 일회적이고 즉흥적인 통기타 음악들이 주던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그러나 8,90년대의 이른바 대중문화의 폭발기(상업적인 의미에서)를 거치면서 사라져갔다. 수백만 장의 음반 판매고로 상징되던, 복제된 CD들이 넘쳐나던 이 시기에 일회적이고 즉흥적인 아날로그 감성의 아우라는 희석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2010년 이 통기타 선율이 다시 TV를 통해 흐르기 시작했다. 아이돌이 제2의 한류를 예고하며 디지털과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이 시점에 왜 이 구닥다리처럼 보이는 통기타가 디지털의 한복판에서 어떤 울림을 전하고 있는 걸까.

‘세시봉’ 신드롬과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 그리고 가려져왔으나 이제 점점 부상하고 있는 인디 뮤지션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흐름 속에는 이 아날로그라는 강이 흐른다. 그리고 그 강은 다름아닌 통기타 선율에 따라 춤을 추고 있다.

● 오디션이 일깨운 아날로그의 힘
수수한 옷차림의 장재인이 ‘슈퍼스타K2’ 오디션 현장에서 맨 바닥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때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온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기획사 가수들의 화려한 옷차림에 눈멀고, 기계음으로 잔뜩 포장된 사운드에 귀 먼 우리들의 감각을 깨운 것인가. 꾸미지 않은 장재인의 스타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가난해 보여도 모든 음악적 감성을 한껏 품고 있는 기타라는 악기가 가진 힘이었을까. 그 순간 우리가 느낀 건 디지털로 무장된 세상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온 아날로그의 힘이 아니었을까.

바야흐로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다. ‘슈퍼스타K2’의 성공 이후 이 형식은 이른바 ‘되는 포맷’으로 자리 잡았다. ‘슈퍼스타K2’의 따라 하기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위대한 탄생’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그 형식 자체가 가진 힘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현실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며 대중들을 열광시키는 경쟁 시스템이 있고, 그 위에 ‘공정함’이나 ‘멘토링’ 같은 판타지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음악이다. 실로 오디션 프로그램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우리는 이토록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경쟁자들은 무반주로, 혹은 기타 하나 달랑 들고 나와 오로지 노래로 승부한다. 물론 춤을 추는 경쟁자들도 있지만 심사위원들이 그들에게 주문하는 건 결국 “노래를 하라”는 것이다. 게다가 심사위원들은 발성의 문제나 스타일, 음색 등을 조목조목 잡아내며 경쟁자들이 갖고 있는 노래를 친절하게 분석해준다. 그러니 음악에 대한 감성을 깨우는 프로그램으로 오디션 프로그램만한 게 있을까. 우리는 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어떤 훈련을 받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기획사 가수들의 화려한 춤과 사운드에 묻혀 있던 가사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이 훈련이 우리가 잊고 있던 감성을 깨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날로그 감성이다. 물론 이 아날로그 감성은 음악에 있어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장기하가 ‘싸구려 커피’를 부를 때 우리의 가슴을 탁 치고 들어왔던 것. 각종 라이브 무대 혹은 그런 무대를 방송화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늘 그것을 봐왔다. 하지만 최근처럼 이 아날로그 감성의 음악들이 귀에 쏙쏙 들어오게 된 건, 분명 저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 ‘남자의 자격’에서 ‘세시봉’까지, 아날로그의 귀환
작년 ‘남자의 자격’ 하모니 편이 대중들의 가슴에 쏟아 부은 것도 다름 아닌 이 아날로그 감성이다. 처음 보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고, 어색하게 목소리를 맞춰가고(그것도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그 과정이 알 수 없는 뭉클함을 준 건 그 과정과 음악이 주는 아날로그의 힘 덕분이다. 그 대회에 나가는 과정이 오디션 프로그램과 거의 형식적으로 일치한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노래와 하모니에 대한 일종의 학습을 받았다. 그래서 그저 하모니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시봉’은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이라는 음악적 거장들을 세워두고 창조적인 음악의 탄생 과정을 보여주었다. 윤형주가 즉석에서 만난 여자들을 위해 ‘라라라’의 가사를 단 40분 만에 담아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그 놀라운 시적 가사들과 어우러지면서 진짜 음악의 단면을 끄집어냈다. 음악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이고 즉흥적인 힘으로 ‘창조되는’ 것이라는 걸 그 이야기는 들려주었다. 그리고 누군가 통기타를 퉁 퉁기며 노래를 하기 시작하면 즉흥적으로 하모니를 맞춰 가며 노래 부르는 아날로그적인 감동을 안겨주었다. 악동 이하늘이 눈물을 흘린 건 바로 그 알 수 없는(사실은 잊고 있던) 감성을 거기서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시봉’ 열풍이 만들어낸 아날로그적 감성은 세대 통합적인 문화 향유의 한 전형으로 급부상했다는 점이다. 즉 ‘세시봉’이 슬쩍 꺼내 보여준 그 아날로그적 충격 속에,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들 역시 반응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송창식이라는 가수가 부르는 그 독특한 창법에 매료되었다. 한편 일찍이 이 아날로그적 감성의 끝단을 경험하고는 디지털 세상을 살아냈던 중년들은 이 ‘세시봉’이 재현해낸 음악적 감성에 빠져들면서, 점점 통기타의 현재를 보여주는 인디 뮤지션들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시봉’이 물꼬를 연 중년들의 아날로그에 대한 갈증을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이 채워주고 있다는 얘기다.

● 깨어난 아날로그 감성, 인디 뮤지션들의 부상
장재인이 주목받고 있는 것처럼, 대중들이 지금 인디 레이블에 눈을 돌리는 것은 이런 아날로그적 체험과 무관하지 않다. ‘제2의 장기하’라는 얘기를 들으며 주목받고 있는 인디밴드 10cm의 성공은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디지털 음원 사이트 100위권 내에 곡이 랭크되고, 음반도 초도물량 1만장이 이미 다 팔려나가 추가 생산에 들어간 10cm의 성공에는 현재 국내 대중문화계에 쓰나미처럼 불어 닥친 아날로그 감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한 때의 유행이 아니다. 이미 깨워놓은 아날로그 정서에 대한 욕망은 복제된 가짜 디지털 정서가 채워주기 힘든 면이 있다. 이미 진짜 향기 나는 꽃을 보게 된 대중들이 조화에 눈을 돌릴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홈레코딩 기술에 있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내부적으로 실력을 쌓아온 인디씬들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건 바로 이 대중들에게 깨어난 아날로그 감성 덕분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은 인디씬들의 음악이 유튜브 같은 지극히 디지털적인 매체를 타고 대중들에게 번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에 올려진 10cm의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라는 곡의 라이브 영상을 보다보면 우리가 각종 쇼 프로그램에서 아이돌 그룹의 무대를 통해 발견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 진수를 느낄 수 있다. 노래를 하다가 악기를 떨어뜨리자 잠시 멈췄다 악기를 집어 다시 연주하는, 실수조차 하나의 감성으로 전해지는 상황.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부터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이 아날로그 감성은 어쩌면 대중가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맹아로 자라나고 있다.

통기타 음악이 갑작스럽게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뛰어오른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디지털이 극단화된 현 시기에 이르러서이다. 하지만 이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사실 디지털의 극단은 늘 아날로그를 지향하고 있었으니까. 스마트폰에 열광하게 되는 것은 그 디지털적인 감성 때문이 아니라, 늘 매만지고 두드리고 반응하는 그 스마트폰의 아날로그적인 감성 때문이다. 통기타 음악은 이제 이 디지털 세상을 조금은 따뜻하게 만들어내는 아날로그의 첨병으로 대중문화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그래서 이것은 그저 향수나 복고 같은 한때의 유행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앞으로 이 감성에 대한 욕구는 점점 커질 것이라는 점에서 이 흐름은 미래를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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