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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음악, 사재기의 늪에 빠지다

문화사재기 현상 근절은 독자의 소신 있는 기준이 필요

모든 것이 메말라가는 시대, 책과 음악만큼 우리의 위안이 되는 존재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노래를 고르고 소설을 살까? 자신의 취향과 기준을 분명히 하고 서평과 리뷰를 꼼꼼이 읽은 뒤에, “그래 이거야” 하며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다수의 선택, 그러니까 베스트셀러의 순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최근 이런 성향을 악용해 편법적으로 순위를 조작하는 행위가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출판계의 책 사재기와 대중음악계의 음원 사재기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면서, 우리 대중문화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1) 물 위로 올라온 사재기의 현실
지난 8월 7일 국내 대형 음악 기획사들이 ‘음원사재기’에 대해 검찰 수사를 요청해왔다. 어떤 조직적 세력이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특정한 노래의 듣기 횟수를 늘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가요 순위가 크게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폭로가 이어졌다. 음원 사재기의 수준이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이고, 해외에 기반을 둔 불법 브로커 팀까지 개입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음원 사이트에서 다수의 ID를 확보한 뒤 정액권을 구입, 특정곡을 다운로드하거나 스트리밍하는 식으로 순위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스트리밍이 즐겨 사용되는데, 1분 이상 스트리밍되면 차트에 반영된다는 점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4분 정도 되는 곡을 하나의 ID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전곡 듣기를 할 경우, 24시간 동안 계속 들어도 360회가 나온다. 그런데 모니터 결과 1천회를 넘어 1만회까지 스트리밍되었다고 한다. 브로커들은 신인급의 뮤지션이 업계 1위 음원사이트에서 10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5억원 정도를 요구하고 있다는 등 구체적인 수치까지 나오고 있다.

음원 사재기는 팬들까지 체감할 정도에 이르고 있다. 사재기는 사용자가 적은 새벽 시간대에 주로 이뤄지는데, 이때는 실시간 차트에서 순위가 순식간에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완성도가 높지 않거나 인지도가 떨어지는 가수나 그룹의 노래 순위가 급작스럽게 치솟는 경우는 더 큰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유튜브 조회수까지 조작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SBS 시사프로그램 <현장21>은 사재기를 통해 베스트셀러가 조작되고 있다며 출판사 자음과모음이 펴낸 책들을 사례로 제시했다. 황석영의 <여울물 소리>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등의 책이 그 혐의를 썼고, 작가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사재기 관행을 성토하고 책을 자진 절판시켰다. 출판사 측에서는 대표가 사직하고 해당 출판물을 회수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으나, 최근 자체 조사 결과 사재기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나서 새로운 파문이 예상된다.

책 사재기 역시 여러 지능적인 수법이 동원되는데, 최근에는 인터넷 서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음원 사재기처럼 여러 ID를 확보한 뒤에 이를 통해 특정 책을 사재기하는 것이다. 출판 시장이 크게 축소되면서 하루에 5백 ~ 6백부만 구매하면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사재기에 용이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 일반인들로부터 월정액을 받고 여러 권의 책을 보내주는 서비스들이 이런 사재기에 활용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2) 무엇이 사재기를 만들어내는가
사재기를 벌이는 가장 단순한 이유는 해당 책과 음악의 판매 순위를 올리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순위가 향후 판매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방송사들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다시 편성하기 시작했다. 음원 사재기로 시작된 온라인 순위조작은 방송사 집계 순위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 순위에 따라 방송 출연의 기회를 얻는다.

방송 노출은 다시 여러 공연 행사 수익으로 이어진다. 음반/음원 수익보다 공연 행사 수익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대중 음악계의 현실로 볼 때, 음원 사재기에 드는 수억원 정도는 투자금 정도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재기를 통해 지불된 비용의 상당 부분은 저작권 수익으로 회수할 수 있으니, 실제 투자액은 더 줄어든다. 도서 시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음악의 경우, 국내 음원가격이 너무 싼 것도 큰 원인이다. 음악저작권 사용료 징수방식을 개선하면서 음원 가격을 높였다고는 하나 정액제 할인 이벤트 등을 통하면 100원이 안되는 가격으로 1곡을 내려받을 수도 있다. 애플 아이튠스가 곡당 1천 원 정도 되는 것과 비교하면 덤핑에 가까운 수준이다. 월정액 스트리밍을 이용하면 더욱 적은 돈으로 특정곡을 반복해서 틀 수 있다.

책과 음반의 사재기가 최근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물밑에서 사재기의 관행이 있어왔다. 그러나 이런 오프라인의 사재기는 물리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서점들은 특정인이 대량 구매를 할 때는 순위 집계에서 제외하기도 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여러 인력을 동원해 소량씩 다양한 서점에서 책을 사야 한다. 음반 역시 비슷한 상황이고, 전표 등의 증거가 적발될 가능성도 있다.

온라인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훨씬 용이해진다. 소수의 팀이 다량의 ID와 개인정보만 있으면 얼마든지 그 양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사재기가 주로 일어나는 인터넷 서점의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고객의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한 사람이 책을 몇 백부씩 샀다고 사재기로 몰아붙일 수도 없다. 모임이나 직장에서 대량 구매하는 일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량구매까지 막으면 시장 자체가 위축될 위험이 있다.

3) 사재기로 병드는 대중문화
대중문화의 트렌드가 점점 빨리 바뀌고 있다. 작품이 시장이 깔리는 초반에 순위권에 진입하지 못하면 곧바로 사장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런데 그 순위마저 공정성을 잃고 있으니, 진짜 실력을 갖춘 뮤지션이나 좋은 책이 팬들과 만날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창작자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조작 때문에 자신이 밀려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창작의 의욕조차 잃게 된다. 제작사의 입장에서도 사재기 등의 수단에 돈을 들인다면 결국 창작 환경에 투자할 부분을 잃고 만다. 최근 슈퍼스타 K에 일류 세션맨이 도전자로 나오기도 했는데, 그만큼 음악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재기를 통한 순위 왜곡은 중소 출판사, 인디 음악인의 설 자리를 더욱 축소시킨다. 수년 간 준비한 야심작으로 인기를 모으다가 사재기로 순위에 밀리면 힘이 쭉 빠진다. 거짓된 수단으로 순위를 올린 가수나 소설가 역시 자신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죄책감을 털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재기가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온갖 혐의들이 난립하게 된다. 갑자기 유명세를 타게 된 신인 가수나 작가들은 안티 팬들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 순위조작이라는 음모론의 희생양이 되기 쉽다. 대중문화 시장이 지탱할 축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스포츠에서의 승부 조작이나 다름 없는 행위다.

4) 사재기라는 승부조작,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자발적인 사재기는 언제나 있어 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이나 소설가의 책을 여러 권 구매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행위는 좋은 음악과 책을 공유하게 한다. 순위제도 역시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문화의 트렌드를 읽고 책과 음악을 고르는 기준이 되고, 창작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준다. 하지만 현재의 사재기와 순위제도의 병폐는 한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우선 사재기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을 적극적인 적발로 바꾸어야 한다. 온라인 서점과 음원 사이트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사재기 의심 ID를 확보하고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책의 경우 5백만~1천만 원 수준의 과태료라는 솜방망이 처벌도 바뀌어야 한다. 반복해서 사재기를 저지르는 경우 분명히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기 행위로 보고 적절한 양형 수준의 중범죄로 다스릴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문화를 창작하고 향유하는 모든 사람들의 자정 노력이 절실하다. 여러 장르에 걸쳐 비평적인 독자층을 형성하고, 그들의 노력으로 순위를 넘어선 새로운 판단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블로그 SNS 공간의 입소문도 중요한 수단이다. 최근 이마저도 악성적인 마케팅의 도구가 되고 있지만, 그것의 순기능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음악 팬과 독자 스스로가 보다 소신 있는 기준으로 순위를 넘어선 자기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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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