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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말라야’와 우리학교 산악부

“이 시대의 진정한 인간적 존재로 돌아온 그들 앞에 머리를 숙이고”

2004년 계명대학교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조난은 그동안 멈춘 시간의 고통으로 가슴에 존재해 왔다. 최근 영화 ‘히말라야’로 인해 그들의 고귀한 정신은 빛이 되어 돌아왔고, 수많은 사람들과 아픔을 나눔으로써 순화되고 있다. 박무택과 장민, 백준호, 휴먼 원정대를 이끈 엄홍길 대장, 초인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포커스를 맞춘 픽션 영화 ‘히말라야’의 이면에 계명인이 겪은 실화는 이러하다.

계명대학교 개교 기념사업의 하나로 계명대학교 산악부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84m) 정상 등정을 목표로 2004년 3월 15일 출발했다. 계명인의 도전정신과 사랑의 실천으로 결속된 등반대장 박무택, 백준호, 장민, 김태용, 이정면, 배두찬, 박무원은 국내외 산 등정을 통해 베테랑으로 인정받는 계명 산악인들이었다.

3월의 히말라야는 부드러운 햇살 아래 웅대했고 대원들은 겸허했다. 베이스 캠프(5,200m)까지 이어지는 카라반은 젊은 투지로 결속되어 세계 각국의 산악 대원들 중 그 기상은 출중했다. 베이스 캠프에 이르러 악마와의 사투에 비길 고소적응도 순조로웠다. 긴박감 속에 선발된 박무택, 장민의 정상 등정 막바지를 숨죽여 기다렸고 드디어 쾌거를 듣는 순간 벅찬 감격으로 열리는 새벽을 맞았다. 그러나 그 이후, 어떤 지옥의 형벌보다 무서운 소식을 접해야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정상등정 성공확률은 열 명 중 한 명이고 거기서 다시 하산까지 성공하는 확률은 네 명 중 한 명이라 하더라도 너무나 참혹한 비보였다. 신의 영역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 성공 후 하산 길의 칼날 같은 직벽을 내려 오던 장민이 체력 소진으로 거의 실신 상태였고, 박무택은 설맹으로 앞을 볼 수 없었다. 박무택은 결단을 내려, 자신은 자일에 의지한 채 장민을 먼저 하산시켰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대기하고 있던 백준호가 구조를 위해 악천후의 심야에 11시간 걸려 올라가서 박무택을 만났으나 이미 동반하산할 수 없는 상황임을 무전으로 알리고 나서 박무택의 마지막을 지켜본 후 자신도 하산길에 실종되고 말았다. 8천m급을 여러좌 정상등정하며 생사를 함께했고 16좌 완등을 약속했던 박무택의 비보를 들은 엄홍길 대장은 휴먼 원정대를 결성하여 무택을 집으로 데려오겠다고 유족들에게 다짐하고 나섰다. 원정대는 에베레스트 정상 인접위치에 잠든 박무택을 만났으나 이동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대원들은 무택에게 작별을 고하고 해가 잘 드는 곳에 돌무덤을 지어 에베레스트의 품에 안겼다. 장민과 백준호는 찾지 못했다. 그리고 목숨을 건 휴먼 원정대는 모두 무사 귀환했다.

백준호는 산악인 최초로 의사자로 추서되었다. 히말라야를 등정하던 중 조난당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위한 추모비가 히말라야의 페리체에 있다. 필자는 해마다 그곳에 가서 박무택, 장민, 백준호가 새겨진 이름들을 만지며 산자의 몫은 무엇인가 물어본다. 이제는 그들의 크나큰 삶의 가치와 실천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서 이 시대의 초인으로 살아나고 있다. 그들이 우리들 곁에 돌아왔음을 가슴으로 맞이해야 할 때가 되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빙하, 악마의 입 크레바스, 눈앞을 가리는 화이트 아웃을 이겨내야 하는 에베레스트 등정은 지도 상의 여정이 아니다. 예측불허의 대모험이고 탐험이다. 문명은 자연의 위험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주지만 우리는 스스로 찾아 나서서 그러한 자연에 맞서기도 하고 웅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에 크나큰 감동을 받기도 한다.

디지털화 시대가 주는 편리하고 빠르고 정확함이 주는 혜택이 인간을 나약하고 이기적으로 몰아갈 수도 있는 현실에서 아날로그적 감성과 균형을 이루어야 인류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들 한다. 풀꽃을 지나온 바람결에 벗과 함께 가슴을 열고, 눈사태 속에서 사투의 순간에도 너의 생명을 나의 생명으로 지켜나가는 인간적 결속력, 그들의 탐험 정신과 사랑의 실천이 위대하다는 것을 영화 ‘히말라야’를 보면서 다시 일깨우는 것은 이 시대 최고의 삶의 가치로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돌아오지 못한 그들과 가족의 상처는 너무나 크다. 그렇지만 누군가 말했다. ‘가만 있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그들 뒤에 남겨진 가족의 애틋함을 저버린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순간에도 인간적 가치를 소중하게 지키는 것이 가족의 곁에 진정한 인간적 존재로 남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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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