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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꿎은 술 탓하지 말고 ‘왜 마시는가’를 생각하라

대학가 술 문화를 지켜본 한 ‘꼰대’의 제언

페이스북에서 본 한386세대는 자신이 자주 가던 술집의 젓가락이 늘 휘어있었다고 했다. 민주주의를 외치면 어딘가로 끌려가서 치도곤을 당하던 시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허름한 술집에서 시국을 한탄하는 것 뿐이었다. 으레 술 기운이 올라오면 자연스레 민중가요가 입에서 흘러나왔고, 박자를 맞춘답시고 젓가락으로 처절하게 식탁을 내리쳤단다. 그러다보니 젓가락은 휘어있을 수밖에 없었단다. 실제로 취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세상이긴 했다.

2016년 현재, 지금도 각 대학교 앞 술집들은 시끌벅적하다. ‘환영회’ 혹은 ‘대면식’ 등 갖은 이름으로 술자리가 잡히면 신입생들은 분위기에 취해, 혹은 선배가 주는 술이라 어쩔 수 없이 한 잔 두 잔 들어간다. 술자리 분위기 띄운다고 ‘베스킨라빈스 31’이니, ‘랜덤게임’이니, ‘왕게임’이니하는 술게임을 하다보면 한 사람이 소주 한 병을 30분 안에 비우는 건 일도 아니다. 게다가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냐고, 내 어깨를 보라고, 추고 있지 않느냐고까지 한다면 술 안 마시는 사람이 그 자리의 분위기를 해치는 역적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대학생은 술을 참 많이 마신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은 왜 술을 ‘먹이는’ 것일까? ‘마시는’게 아니라 ‘먹이는’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독자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난 지금도 술잔을 ‘원 샷’으로 비우지 않으면 화내는 선배를 이해할 수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술을 먹이지만, 궁색한 변명이라고 대는 것이 결국 ‘학과 또는 동아리의 단합을 위해서’라고 한다. 10여년 넘게 술자리를 지켜 본 한 ‘꼰대’ 선배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그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소맥 한 잔 가득 채워 ‘원 샷’시키고 싶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많은 대학생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모든 대학가 술자리 문화를 악폐습의 문화로 만들어버린 ‘사발식’이라는 이 의식부터 살펴보자. 다행이 10년 전부터는 사발에 가득 술을 부어 강제로 ‘원 샷’을 시키는 이 무섭고 해괴망측한 의식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지만, 아직도 사발식이 존재하는 학과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선배가 후배에게 못 마시는 술을 억지로 먹이는 사례가 존재하며 이 때문에 누구 하나 구급차에 실려나가야 끝나는 사고도 발생한다. 하지만 “사발식을 왜 하나요?”라고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해 주는 선배는 드물다. ‘사발식의 유래’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는 수고조차 하지 않은 게으른 선배들이 많은 탓이다. 사발식은 고려대학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려대가 보성전문학교이던 일제시대, 막걸리를 토할 정도로 마신 뒤 독립투사들을 탄압하기로 유명했던 종로경찰서 앞에 구토하면서 “이 더러운 일제의 개들아”라고 외친 것이 사발식의 기원이라고 많은 검색엔진들이 대답해주고 있다. 한 마디로 ‘마시는’게 목적이 아니라 ‘토하는’게 목적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학가는 사발식의 의미를 전달해주는 사람도, 사발식을 할 명분도 사라지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사발식의 변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왜 술마시는 자리를 만들었는가’의 의미를 알려주는 선배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술자리는 매우 말초적이다. 술자리 게임은 사실 누군가에게 술을 먹이기 위해서임을 부정할 수 없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시끌벅적한 술자리가 끝나고 남은 것은 무엇이었는지.

정말 ‘단합’을 위해 술을 마신다면 술자리 위에서는 대화가 오고가야 한다. 선배는 듣고, 후배는 물어야 한다. 후배의 질문에 선배는 답해야 한다. 선배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후배는 술 한 잔을 마시고 더 묻고싶은 부분을 선배에게 재차 질문해야 한다. 선배의 답변이 마음에 들었다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선배와 같이 한 잔 하면 된다. 술잔이 비었으면 따라주기만 하면 된다. 나는 나대로 술을 마시되, 혼자 마시기 멋쩍다면 ‘원샷’이 아닌 그저 ‘짠’ 한마디로 끝내면 된다. 그런데 그게 어려운 모양이다. 안다. 선배들이 안 가르쳐 줬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다. 선배된 자로서 미안할 뿐이다.

더러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전통을 어찌 쉽게 끊나요?” 이런 분들은 당장 국어사전을 펴서 ‘전통’이라는 단어와 ‘인습’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시길 바란다. 그리고 그런 걸 ‘전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후배든 타인이든 보여줄 수 있는 인생의 컨텐츠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내가 권위를 세울 방법이 그저 주량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나마 계명대신문을 읽고 있을 그대들은 젊기에 컨텐츠를 채울 공간이 아직 많으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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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