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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SNL코리아’에는 섹시코드만 있나

19금 콘텐츠가 아니라 페이소스 및 다양한 장치들이 구성된 효과에 집중

‘SNL코리아’는 근래 방송 프로그램 가운데 케이블 채널 소속임에도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질투 때문일까, 주목을 받으면 말이 많은 법. ‘SNL코리아’는 인기가 있는 만큼 소송을 당하고 징계 논란에 휩싸여왔다. 도대체 왜 새삼 이런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지 설왕설래 했다. 19금 콘텐츠가 덩달아 몸값이 뛰었고, 비슷한 포맷의 콘텐츠가 쏟아졌다. 이 와중에 찬반논란은 물론 정치적 도덕적 기준과 맞물리면서 크게 불거졌다. ‘SNL코리아 현상’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렇다면 어떤 사회적 심리적 이유가 있는 것일까

‘SNL코리아’는 일단 재미있다. 재미있는 콘텐츠를 논리적으로 풀어보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도 없다. 아름다운 노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순간 노을의 아우라가 깨져버리는 것과 같다. 재미있게도 분석을 하는 이유는 자칫 잘못된 인식으로 그 장점이나 문제점을 간과하거나 외면하여 장래에 생각지 못한 문제를 낳을 수도 있겠다.

예컨대 19금 콘텐츠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인기가 높을 것이라는 지적은 맞고도 틀리다. 19금 콘텐츠를 다분히 함의하고 있지만 더 듬뿍 담고도 실패하는 19금 콘텐츠는 많기 때문이다. 성적 억압의 이중적 위선을 폭로하는 것이야말로 문화적 진보를 위해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많이 시청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이렇게 목적의식만으로 콘텐츠 소비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른바 19금 콘텐츠는 금기 위반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금기 위반은 강력한 쾌감을 전제로 한다. 고대 이래로 쾌락은 억압의 대상이었다. 억압은 나쁜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억압은 바로 적절한 컨트롤 못할 상황과 사람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들어 합리화 한다. 쾌락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미칠 사회적 영향을 우려해 나쁜 것으로 만든 것이다.

금기 위반 쾌락의 하나는 성적인 금기 위반이다. 보통 성적인 담론은 보통 공적인 대화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사회적 영향 때문이다. 성적인 대화가 많으면 사회질서가 무너질 것이라는 염려는 이런 성적 담론의 금기가 자생하는 토양이 된다. 국가기관을 통해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이런 내용은 통제받기 일쑤이다. 사람들은 사적인 대화에서 음담패설은 이야기로 공유한다. ‘SNL코리아’는 개인적인 상상이거나 사적인 대화에서나 이루어질 것 같은 성적인 내용들을 담아내어왔다. 개인이나 사적인 대화에서 상상할 수 없는 내용들이 영상미를 자랑한다. 욕설은 배설의 미학을 같이 부합하게 한다. 그래서 이 프로에는 똥과 오줌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또 다른 금기 위반의 쾌락은 권력에 대한 비판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권력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을 비판할수록 강력한 쾌감이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에 대한 비판은 금기가 된다. 금기에는 진실이 담겨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진실이 유포되면 피해 보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이를 막는다. 그런 사람들이 막을수록 권력 비판에 대한 콘텐츠는 선호된다. 민감한 정치적 사안일 경우 막으려는 자와 드러내려는 자가 치열한 다툼을 한다. ‘여의도 텔레토비’는 바로 이런 정치적 측면에서 충분히 분석할 수 있다.

요컨대, 19금 콘텐츠는 단순히 성적인 내용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한다. 그것은 가치관의 충돌을 통한 기존 질서의 훼손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여기에는 형식적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드라마나 영화, 광고들을 패러디한다. ‘먹거리 X파일’, ‘그것이 알고 싶다’, ‘무릎팍 도사’ 같은 방송 프로는 물론이고 진중권 같이 특정 유명인도 패러디 한다. 특정인 인기 패러디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작품이나 콘텐츠, 인물을 다시 재창작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재창작은 단순히 다시 만든다는 차원이 아니라 몇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 유희적이어야 하고 풍자적이어야 한다. 단지 재미만 있으면 패러디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라 단지 재치 있는 재창작일 뿐이다. 흔히 착각하거나 혼동하기 쉬운 부분이다. 풍자는 사회적 가치와 지향점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단지 재미만 있을 경우 올 수 있는 공허함을 이러한 풍자가 가득 채워준다.

이러한 유희적 풍자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효과를 보이게 되는 다른 대상이 있다. 바로 출연자들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들은 의식 있는 이들이 된다. 왜냐하면 단순히 웃기는 것이 아니라 뼈있는 유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진실을 은폐하려는 이들이 공격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세밀한 장치와 구성이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은 하나의 크루즈와 같아서 고정된 승무원과 승객이 있는데 승객조차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캐릭터들이다. 승객들은 언제든 바뀌지만 시청자들은 그 다양하고 화려한 승객들 즉 게스트들 때문에 더욱 흥미있어한다. 그것도 당대 이름 있는 이들이 선선히 출연하는 것은 단지 웃기기만 하는 프로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론 시청자들도 가벼운 음담패설이나 정치 비평 차원의 프로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 방식이 무엇보다 우회적이고, 은유적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직접적인 콘텐츠로 얼마든지 자신의 콘텐츠 지배력을 구가하고 있다. 성적인 콘텐츠의 직접적 충동성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여기에 정치적 비난은 인터넷 댓글로도 충분하다. 오히려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보다 은유적으로 표현하기가 더 어렵다. 직접성의 범람은 오히려 간접성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SNL코리아’는 은근한 성적인 내용의 구성과 설정으로 풍미한다. 여기에 최고의 개그맨과 괜찮은 스타 배우들을 투입한다. 그것도 역시 가볍기만 한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평가가 이를 더욱 가능하게 한다. 믿을만한 이들의 담론은 그 가치를 선순환 시킨다.

마치 ‘무한도전’이 큰 인기를 끈 것은 다양한 소재의 무한한 도전이라는 컨셉에 있듯이 이 프로그램에도 소재에 제한이 없다. 각각의 케이스는 달라 선뜻 처음에는 낯설 수 있지만, 점차 롱테일 법칙에 따라 선호와 지지를 확대해 갈 수 있다.

무엇보다 비공개 꽁트 코미디의 화려한 부활이라는 점에서 장르적 가치도 있다. ‘개그콘서트’ 같은 공개형 코미디는 다양한 세트를 활용하지 못하며 연극과 같이 등장 배우들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하기 힘들다. 그런 점은 전문 예능인들만 활약하게 만든다. 하지만 비공개 콩트 코미디는 적절한 은폐를 통해 초보 출연자도 충분히 주어진 배역을 담당할 수 있다. 이런 점은 연기 데뷔와 연마를 위한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유아적이다. 텔레토비의 등장은 이를 잘 말해준다. 복고적 코드는 세대의 통합적 공감을 자극한다. 권력집단과 정치현상을 거의 유아수준으로 대체시키는 것은 정치인에 대한 불만과 불합리한 권력 현상에 분노하는 이들일수록 호응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SNL 코리아’식의 접근방법은 타당하기만 할까. 만약 한계가 있다면 어디까지일까. 일단 이 프로그램은 예능 오락 프로이기 때문에 그 한계는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밖에 없다. 성적 담론이 등장하지만, 정작 성적 담론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일종의 양념이나 감초 같은 효과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은 성적인 존재로만 규정하는 것은 편향된 이미지 구축에만 효과적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즉 정형화는 그렇지 않는 예외들을 짓눌러버린다. 하얀 백조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검은 백조도 있다. 모든 남성들이 성적인 측면에서 이 프로가 다루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는 않는다.

정치적 사안이나 권력의 문제도 복잡한 사안들에 돌직구를 날리기보다는 정치인 캐릭터들을 흉내 낸 수준에 머물고 만다. 권력의 모순에 대해 다루기보다는 특정인물의 몇 가지 포인트를 우습게 건드리고 만다. 우리 삶이 어떻게 정치와 연결되어 있으며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관점은 얕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엄청나게 극찬할 필요가 없는지 모른다. 단지 예능 가운데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는 차원이기 때문이다. 유아적인 코드에 그치는 것은 풍자의 대상이 공격 본능을 잃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유아적 코드는 정작 정치의 본질을 회피하게 만든다.

성적인 콘텐츠가 필요한 것은 문화적 다양성 차원이다. 성적인 담론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다른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이라면 정작 성을 억압, 수단화하는 기제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 성의 소외는 왜곡과 차별을 낳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몸밖에 없다. 몸을 말하지 않고는 성립이 안 된다. 그렇게 여성을 향한 관점을 대상화 한다. 그것은 미디어 매체이기 때문에 현실을 불투명하게 반영하는 것을 확장한다. 이러한 점은 다른 매체들이 무분별하게 ‘SNS코리아’를 모방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정치를 비판하는 것은 정치 자체에 대한 비판이 쾌락을 주기 때문이 아니다. 정치에 대한 풍자는 권력에 대한 더 나은 행동의 실행에 목적이 있다. 적어도 그들과 같이 행동하는 곳이 우스운 그리고 가볍게 취급받아야 할 대상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론화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보장한다. 은폐와 왜곡은 일부 사람들만을 행복하게 한다. 성과 정치는 대표적으로 이러한 틀 안에 갇히고 만다. ‘SNL코리아’가 지향해야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모든 19금 콘텐츠가 생각하여야 할 점이다. 우리는 성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정치를 외면해서도 존립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둘은 현실에서 같이 결합된 방식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둘은 끊임없이 지적되어야 한다. 물론 재미있게 말이다. 다만 그것들 자체가 소외된다면 우리 삶 자체가 소외될지 모른다. 단순히 킬링 타임용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이 좀 더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의 페이소스를 비롯한 다양한 장치들이 구성되고 효과를 발휘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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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