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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과 한국문학

사회와 문학을 연결시키는 고리 및 번역이 사회적 의제로서 진지하게 논의돼야


매년 10월이면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은 증폭한다. 노벨문학상 때문이다. 노벨문학상은 가치 있는 상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대표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지만, 세계적인 상임에 틀림없다. 명예로 보나 상금으로 보나 아직까지는 작가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상이다. 노벨상 수상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나 조금이라도 한국문학출판시장의 진작에 기여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게 보면 한국출판문화를 위해서도 수상하면 좋은 상이다. 우리문학의 해외 인지도를 높이는데 있어서도 작가의 국적 하나만 가지고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상이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나라에서 문학상까지 받는다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고양하는 국가로서 세계사회에서 부러움을 살 수도 있고 조금 더 기대하자면 우리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하여 우리 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킬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볼 때,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또 권장할 만도 하다. 또한 노벨상이 창시자 노벨의 유언대로 인류의 이상을 구현하는 성과를 낳은 작가에게 주는 상이라면, 이는 문학이 가지고 있는 인류의 보편적 기억과 이상에 대한 공유이기에 이 상과 문학에 대한 높은 관심은 글로벌 시대를 사는 세계인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고도 할 만하다. 이런 노벨문학상을 한국작가가 아직까지도 받지 못했다면 이제 다음과 같은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한 쪽에 우리작가가 노벨상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놓고 다른 한편에는 아직 받지 못한 이유를 넣어보자. 받아야 한다는 부분은 아마 비가시적인 문화적 차원의 이미지와 심리적인 결핍과 연관된 항목이 많이 들어갈 것이고, 받지 못한 부분에는 현실적인 여러 제약 요인들이 들어갈 것이다. 한쪽이 당위와 가능성이라면, 반대쪽은 당위와 가능성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는 현실의 구속 부분일 것이다. 당위와 가능성으로 우리가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란 무엇일까? 먼저 필요한 일은 우리가 선 자리를 찬찬히 살피는 일이다. ‘한국문학의 세계화’, ‘세계 속의 한국문학’, ‘세계와 함께 하는 한국문학’ 등 여러 가지 표제어로 표현되는 우리와 세계와의 만남과 교류를 밑받침하는 우리의 토대를 살펴보자.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사실을 근거로 아직도 우리문학이 세계문학의 주변부에 머물러있다는 지적도 단순히 불편한 마음의 토로가 아니고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인정해 한다면 (주변부임을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문학의 수준을 뜻한다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다),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한국문학 번역의 역사가 짧다는 것과 우리말이 소수어라는 점이 그것이다.

1880년 경부터 민담과 고대 소설이 영어, 일어, 불어, 독어, 러시아어로 번역(안)된 것을 기점으로 넓은 의미로의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 역사를 거슬러 헤아리면 이미 백년이 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등 순탄치 않은 역사에 의해 우리문학의 번역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실제 다시 일정한 형식을 갖춘 것은 1980년대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문학의 본격적인 세계와의 만남은 채 30년 밖에 안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세계화의 진행 가운데 단순히 우리문학의 고유성/차별성만을 강조하며 우리의 ‘독특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세계와 문학으로 소통하겠다는 혹은 할 수 있다는 자의식을 갖은 것은 또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우리와 세계가 함께 눈길이 마주쳤던 2002년 월드컵 전후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문학을 세계에 알리는데 있어 우리는 9살배기 아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주변으로 눈을 돌려보면 일본과 중국이 있다. 일본의 경우 서구로의 개방의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앞섰고, 중국은 자신들이 세계를 보기 전에 세계가 먼저 자신들을 보았기에 해외인지도에서 우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 그럼에도 중국은 2005년부터 고전과 현대문학을 망라하는 ‘국가도서 번역사업’을 벌여 1,200종의 도서를 한꺼번에 번역하는 일에 나섰고 2009년에는 ‘중국문화저작 번역출판공정’이라는 프로그램으로 확대했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국제교류재단에서 제공하는 ‘일본문학번역서지 데이터베이스’ 자료에 의하면 1950년 이후 2005년까지 일본문학의 번역 총 건수는 56개 언어권 20,249건이다. 우리의 경우 민간을 통해 소개된 부분의 통계가 완벽하게 파악되지 않아 정확성은 떨어지지만, 약 3,000여건에 달하며, 2001년 한국문학번역원이 출범한 이후 올 9월까지 공공의 지원을 받아 번역 출간된 작품은 27개 언어권의 437종이다. 시작 단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수어의 문제이다. 소수어의 세계소통은 오로지 번역을 통해 이루어진다. 소수어 중 세계교섭의 역사가 짧다면 해당 번역가의 수도 적다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우리문학의 질적 수준과 상관없이 번역가의 수준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우리문학의 소개는 난망하다고 하겠다. 현재 우리문학을 자국어로 번역할 수 있는 원어민 번역가 수는 많이 잡아도 100명을 넘지 못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숫자를 27개 언어권으로 나누면 평균적인 숫자이지만, 각 언어권 별로 원어민 번역가는 4명 안팎이라는 통계가 나온다. 물론 주요 언어권의 경우 당연히 그 수가 많기는 하지만 우리문학이 산출하는 우수한 작품을 해외로 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다. 우수번역가를 발굴하고 또 새로운 번역가를 교육하는 일이 필요한 까닭이다. 게다가 문학번역은 문학적 능력의 배양이 병행하지 않으면 어려운 작업이다. 문학번역만의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자유 시장경제 체제에서 문학의 상품으로서의 교환은 시장의 역할이다. 세계시장에서의 문학 교환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문학의 해외소개를 단순히 시장논리로만 접근할 수는 없다. 책으로 된 문학작품은 상품이면서 문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공공부분에서 한국문학의 해외소개에 나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뿐만이 아니다. 이미 문학적으로 세계에 알려질 만큼 알려진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도 자국 문학을 알리기 위해 공공재원을 통한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우리와 같은 소수어 국가인 이스라엘, 핀란드, 네덜란드, 덴마크 등 번역을 매개로만 소통이 가능한 국가들도 자국문학의 해외소개에서 우리보다 더하면 했지 덜하지 않다. 그만큼 문학의 해외소개는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의 문화와 그 의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크게 보면 한 나라의 문화적 의식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문학의 해외진출이라고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해보자. 그래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점잖게 소개라고 하든, 적극적으로 진출이라고 하든 그 첫 단계는 나아갈 곳을 바라보면서 우리 내부의 숙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다. 많은 숙제 중 우선 모든 이가 문학을 향유할 수 있게 하는 문화적 장치의 마련이 필요하다. 사회와 문학을 연결시키는 고리를 만들고 단단히 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번역이 사회적 의제로서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노벨상을 비롯한 우리문학의 해외진출의 관건은 사회의 문화적 자원인 우리문학의 수준과 더불어 ‘번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관심은 매년 10월에만 한정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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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봉사활동으로 채워지는 꿈 영원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성년이 되었다. 봉사활동을 즐겨 하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스물두 살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청소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몇 년간 봉사해 오니, 이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작은 불씨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로를 향한 작은 불씨는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 삼아 다양한 연령층을 위해 복지를 지원하고, 클라이언트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큰 불씨로 번지게 되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에서 한 첫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분들께 ‘편지 작성 및 생필품 포장, 카네이션 제작’이었다. 비록 정기적인 봉사는 아니었지만, 빼곡히 적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었기에 뜻깊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직접 대상자와 소통할 줄 알았는데 해당 봉사는 대상자와 면담하지 못하고, 뒤에서 전달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장애아동어린이집‘에서 활동한 겨울 캠프 활동 보조일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동들이 다른 길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