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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분야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건축상

걸출한 작가를 키우기 위해서는 대중문화에 비견되는 일반인의 건축문화에 대한 애정이 숙성돼야

● 들어가며
2000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한국인이 선정되었던 해에 나는 건축분야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건축상의 그 해 수상자와 같은 건물에서 생활했다. 그 분은 교수로 나는 학생으로. 운 좋게도 프리츠커 수상자의 발표와 연이은 수상소감을 현장에서 듣는 기쁨도 누렸다. 이제 11년이 지난 시점에서 당시의 감명을 상기하며 프리츠커 건축상을 조명하고자 한다.

● 프리츠커 건축상의 역사
이 상의 공식명칭은 Pritzker Architecture Prize이다. 매년 수상자를 선정하는 이 건축상은 걸출하고도 창조적인 작업을 수행하여 인류에게 우수한 건축물을 선사한 건축가들에게 수여된다. 노벨상의 수상부문에는 건축이 포함되지 않고 있어 프리츠커 건축상은 세계가 인정하는 건축분야의 노벨상이다. 건축이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과학, 공학 및 예술이 응집된 문화의 결정체라는 점은 고려한다면 이 상을 수상한 건축가는 가장 높은 수준의 문화 결정체를 창조한 공로가 있다.

이 상은 시카고에 근거지를 둔 하이야트 재단이 후원하는 상이다. 노벨상이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과 제조로 부호가 된 노벨의 유산이 있어 가능했다면 프리츠커 건축상은 시카고의 부호인 제이 프리츠커(Jay Pritzker)와 그의 아내 신디 프리츠커(Cindy Pritzker)의 기여가 있어 가능했다. 또한 이를 기리기 위해 프리츠커 가문의 이름이 건축상의 이름에 사용된다.

● 역대 수상자들
이 상은 1979년 이래로 수상하기 시작하여 30년이 지났다. 30년은 건축분야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며 실제로도 그랬다. 20세기 후반은 건축가들이 기존의 질서에만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탐구 및 구현한 시기로 볼 수 있다. 모더니즘 건축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사조와 스타일에 대한 실험들이 진행되었고 건축가들의 작업은 더욱 치열해졌다.

프리츠커 건축상은 이런 중요한 시간을 함께하며 건축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전 세계에 알리고 그들의 작업을 축복하는 사명을 수행하였다. 최초 수상자로 필립 존슨이 선정되었는데 그는 뉴욕 5인방(New York Five)과 같은 후배 건축가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준 인물이며 국제주의양식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저서 ‘국제주의 양식: 1922년 이후의 건축(The International Style: Architecture Since 1922)’의 공동저자이기도 하다.

주요 작품 중 코네티컷 주의 뉴 케이넌(New Canaan, Connecticut)에 위치한 글래스 하우스(Glass House)는 극도로 단순화 된 직선형의 유리 건축물로 현대적 재료를 사용하여 건물을 중력으로부터 해방하였고 시각적으로 연결된 실내외를 통해 자연의 변화를 실내로 끌어들였다.
수상자 중에는 아시아인 건축가와 여성 건축가도 있다. 초기 4년 동안은 주로 북미와 유럽에서 수상자들이 선정되었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권의 건축이나 건축가들이 세계 건축계 전면에 나서지 못한 상황이었다. 1983년에 있었던 아이 엠 페이(I. M. Pei)로 더 잘 알려진 중국계 건축가 아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의 수상은 놀라운 일이었다.

홍콩 중국은행을 설계하였고 아시아인 최초로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그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 피라미드의 설계경기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비전공자들도 대중매체를 통해 이 건축물을 접한 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면 광장에서 접하게 되는 유리 피라미드가 그의 작품이다. 여성 최초로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건축가는 동대문 운동장 자리에 들어설 건축물의 설계자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자하 하디드(Zaha Hadid)이다.

이 놀라운 이라크 출신 여성 건축가의 건축물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특징을 보인다. 필자도 그녀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비트라 단지의 소방서 건물을 방문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전의 모더니즘 건축에서 제시하는 유토피안적 합리주의의 질서는 온데간데없고 새로운 지평을 여는 건축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하 하디드의 수상보다 한 해 빠른 2003년의 수상자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설계한 요른 웃존(Jørn Utzon)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건축물을 설계한 웃존에게는 기막힌 뒷이야기가 있다. 빌바오 구겐하임 박물관(Bilbao Guggenheim Museum)을 설계한 비정형 건축의 대가이자 1989년 수상자인 프랭크 게리(Frank Gehry)도 평가를 빌리자면 설계경기를 통해 당선된 웃존의 오페라 하우스는 개념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시대를 앞선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예산의 초과와 이로 인한 주변의 불신으로 인해 오페라 하우스의 건축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완공 후에도 이를 설계한 건축가로 명명되지 않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프리츠커 건축상이 그에게 수여된 것은 문화의 결정체를 빚어낸 이 위대한 건축가의 창조적인 활동에 대한 적정한 가치평가로 판단된다.

● 우리나라는 아직…
한국인 건축가 중 프리츠커를 안은 이는 아직 배출되지 않았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면 지금까지 4회나 수상하였다. 1987년에 켄조 탄게(Kenzo Tange)가 일본인 최초로 이 상을 수상한 이래 푸미히코 마키(Fumihiko Maki)와 타다오 안도(Tadao Ando)가 수상하였고 마침내 2010년에는 카주요 세지마와 류 니쉬자와(Kazuyo Sejima & Ryue Nishizawa)가 수상을 하게 된다.

이들 모두가 건축분야에서 중요한 획을 그은 작가들이다. 동아시아의 3개국 중 중국과 일본은 자국에서 수상자를 배출하였거나 최소한 자국 출신의 건축가가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한국인 건축가들이 아직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지 못한 이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종합적인 상황이 그러하다. 쉬운 변명으로 건축가들의 노력이 부족하다거나 또는 국제화를 이루지 못한 탓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국내외 한국인 건축가들은 시대적 요구나 자의적 노력으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음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츠커 수상자와 같은 슈퍼스타급의 건축가는 부재하다. 슈퍼스타 건축가는 건축가 혼자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는 건축 전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격려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 한국의 현대건축
하나의 흐름이 한국의 현대건축을 대변하지 않으며 이는 대부분의 건축인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이는 건축사조의 영향이 팽배했던 지난 시대와는 달리 21세기의 건축시장이 다양해지고 동시에 극도의 경쟁체제로 접어든 결과라고 생각한다.

건축경기가 예전 같지 않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이 설계경기를 통해 선별되기에 원로작가부터 신진작가까지, 대형 설계사무소에 소속된 건축가부터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작가들까지 모두가 경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앙과 지방의 정부들도 건축이 사회와 문화의 건실한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눈 뜬지 오래고 도시 뿐만 아니라 농촌지역까지 건축과 공공디자인에 기울이는 관심이 놀라울 정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이 불필요하게 과도하지 않은지 의문이 남을 때가 있다. 건축행위는 기쁨이 넘쳐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요즘 세태가 요구하는 지나친 경쟁이 작가들의 의지를 꺽지는 않는지, 학생들을 불필요한 경쟁의 장으로 내몰게 되지 않는지 문득 되돌아보게 된다. 또한 한국의 현대건축이 보다 건강한 성장을 하고 걸출한 작가를 키우기 위해서는 대중문화에 비견되는 일반인의 건축문화에 대한 애정이 숙성되어야 한다.

또한 문화의 창조자이자 지휘자인 건축가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할 것이다. 프리츠커 건축상은 작가 개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사회에 대한 평가로 보아야 한다.

● 마치며
몇 해 전인가 학생들과 부석사에 다녀온 적이 있다. 전통건축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건축물이 대지 및 경관과 이루는 관계에 관심이 있다 보니 이러한 면들이 발견되는 전통건축물의 답사에서 받은 충격은 상당히 컸다.

전통건축이 현재의 건축설계에서 생각하는 접근방법을 자연스럽게 구현하고 있음이 그 이유였다. 명작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에 의해 평가되고 그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다. 산업화 사회를 지나면서 성장위주로 발전한 우리 사회의 건축이 정보화 사회에서 시민들의 관심 속에 질적 성장을 지향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해 건축인들의 어깨가 무겁다.

건축은 휘발성 문화가 아니다. 지속 가능한 문화적 환경에 살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존중도 함께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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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가해자들의 도피처, ‘심신미약’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선 잔인한 사건들이 보도된다.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보도,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2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2011년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의 몸속에 손을 넣어 숨지게 했지만 상해치사로 종결된 사건 등이 그러하다. 이 잔혹한 사건들의 처리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비원 2명을 살해한 20대 남성은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심신미약 주장이 인정돼 일부 감형되었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는 피해자에 입힌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만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4년형을 받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잔혹한 살인을 했음에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법 제10조를 살펴보면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심신장애란 인지·지능·언어·정서·행위 등의 심신기능 면에 장애가